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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루카 18,35-43 예리코에서 구걸을 하던 눈먼 이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렇게 앉아서 구걸하던 눈먼 이마저도 알 정도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만나고자 하시는 사람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가던 이들이 그 눈먼 이를 꾸짖습니다. 앞서 가던 이들은 아마도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만나셔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감히 구걸하는 눈먼 이가 예수님께 소리를 치니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자신들과 존재 자체부터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조차 장애인들은 여전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도 이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사는 세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신들의 세상’이 아니라 ‘불완전한 피조물의 세상’이기에 누군가는 그 불완전을 사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가난한 이가 있고, 장애인이 있고, 고통에 신음하는 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적어도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면, 또는 성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서 가난하게 살고 있고, 장애를 앓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보다 죄가 많아서도, 존재 자체가 천해서도 아닙니다. 이 불완전한 세상을 나 대신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아무런 편견 없이 친구가 되고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피조물로 살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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