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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태 26, 14 – 25 ‘예수님께서 유다를 왜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뻔히 배신할 줄 아시면서 유다 같은 사람을 왜 제자로 삼고 발을 씻어 주시고 빵을 함께 나누셨을까요?’ 누군가 불만스러운 듯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사랑은 따지고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를 부르실 때 따지고 계산해서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어부면 어부인 대로, 세리면 세리인 대로 사랑은 존재 그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어쩌다 그들이 나중에 당신께 침을 뱉고 돌아서도, 값을 매겨 짐승처럼 당신을 팔아넘겨도 있는 그대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로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지만 우리 또한 얼마나 예수님을 배반하고 삽니까? 그래도 우리를 불러 주시고 사랑하시는 것이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사실 베드로와 유다 모두 배반자로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문지기 하녀 앞에서도 쩔쩔매며 예수님을 배반합니다(루카 22,33; 마태 26,69-70 참조). 그런데 유다와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배반을 했지만 먼발치에서라도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반대로 유다의 시선은 끝까지 자신에게 가 있었습니다. 결국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보지 못하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자살을 하고 맙니다. 우리가 같은 죄의 어둠 속에 있어도, 자신을 바라보면 ‘절망스러운 어둠’이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새벽을 기다리는 어둠’이 됩니다. 우리 모두 늘 주님을 배반하며 사는 죄인이지만, 그리고 미사에 참례하고 같은 빵을 나누며 살지만, 베드로와 유다처럼 다른 운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안에 갇혀 있느냐,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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