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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태 18, 21 – 35 베드로도 참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제자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그에게 만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어머니까지 가세하여 제자들과 서로 자리다툼을 하던 것처럼(마태 20,20-24 참조),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상처가 매우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참고 있던 베드로가 결국, 오늘 복음에서 보듯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예수님께 여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용서하기가 어려운데, 우리가 서로 용서하며 산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을 어떻게 수없이 용서하며 살 수 있는지요?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이해하면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주인에게 일만 탈렌트 빚진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 화폐 단위에서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 받는 품삯에 해당합니다. 또한 한 탈렌트는 육천 데나리온, 곧 육천 일의 노동의 가치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만 탈렌트 빚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무한한 빚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께 무한한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을 바라보면 용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라보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뿌리는 하느님에 대한 교만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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