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60425(월)-복음 선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6. 4. 25. 09:01
 
2016년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독서 1베드 5,5ㄴ-14

사랑하는 여러분, 5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6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7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9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10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11 그분의 권능은 영원합니다. 아멘.
12 나는 성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바누스의 손을 빌려 여러분에게 간략히 이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격려하고, 또 하느님의 참된 은총임을 증언하려는 것입니다. 그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
13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14 여러분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복음 마르 16,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인생을 축구 경기에 비유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글쎄 25세까지는 연습기간이고, 50세까지는 전반전, 75세까지는 후반전, 그리고 100세까지는 연장전이라고 하네요. 어떻습니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전반전이나 후반전에 지고 있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후반전 말미나 연장전에서 터지는 인생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둘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큰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초반에 지고 있는 것을 만회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실제로 3~4점 차로 지고 있는 것을 역전 시켜서 승리로 일구어 내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연습기간에 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전반전에 엄청난 점수 차로 지고 있다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후반전까지 지고 있어서 패색이 짙어도 마지막 몇 분 사이에 대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힘차게 달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재미있는 축구 경기는 압도적인 승리를 했을 때가 아니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지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서 이겼을 때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경기로 기억됩니다. 우리의 삶 역시 고통과 시련으로 어렵고 힘듦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이겨냈을 때에는 어떨까를 떠올려 보십시오. 분명히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삶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순간에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졌다고 단정을 짓고 절망 속에서 포기하려만 할까요?

오늘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승천하시기 직전의 주님 말씀을 전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하시지요.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완전한 절망에 빠져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이제 더 이상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 특히 사랑하는 주님을 배반했다는 생각에 완전히 모든 것이 끝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이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님을 당신의 부활로 보여주셨습니다. 승천하시어 하늘로 올라가시지만 이 역시 끝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세상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 선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삶의 끝은 주님만이 알고 계시고, 주님만이 결정하십니다. 삶의 마지막은 우리 영역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주님의 뜻에 맞춰서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 확신이 있다면 굳건히 버텨라(에이브러햄 링컨).


성 마르코 복음사가


내가 원하는 것(자디아 에쿤다요, 수혈 중 에이즈 감염)

내가 원하는 것은 함께 잠을 잘 사람
내 발을 따뜻하게 해주고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게 해줄 사람
내가 읽어 주는 시와 짧은 글들을 들어 줄 사람
내 숨결을 냄새 맡고, 내게 얘기해 줄 사람

내가 원하는 것은 함께 잠을 잘 사람
나를 두 팔로 껴안고 이불을 잡아당겨 줄 사람
등을 문질러 주고 얼굴에 입맞춰 줄 사람
잘 자라는 인사와 잘 잤느냐는 인사를 나눌 사람
아침에 내 꿈에 대해 묻고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해 줄 사람
내 이마를 만지고 내 다리를 휘감아 줄 사람
편안한 잠 끝에 나를 깨워 줄 사람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람.

처음에는 이 시를 읽으면서 별 감응이 없었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사람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 시를 쓴 분이 글쎄 수혈을 받다가 에이즈 감염이 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얼마나 사람을 간절히 원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니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은 얼마나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으로서 다가섰을까를 반성하게 됩니다. 혹시 나에게만 필요한 사람을 찾고 그들을 만났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누군가가 원하는 소중한 사람이 되는 오늘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갑곶성지에 새 가족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예쁘죠?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