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도 12,24―13,5ㄱ
그 무렵 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25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복음 요한 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저는 새벽 일찍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일찍 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잠자는 시간을 두고 “그렇게 조금 자는데 몸이 버틸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16년째 새벽에 일어나면서 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숙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머리만 대면 잠이 들어버리는 아주 좋은 습관(?) 때문에 많은 시간을 잠자지 않아도 개운하게 새벽에 일어납니다.
이러한 제 모습으로 잠에 대해서는 큰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아는 신부님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도 18년째 혼자 편하게 자던 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홀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신학생 때의 한 가지 경험이 떠올려 집니다. 그 당시에 저는 음악 듣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더 좋은 오디오를 구입하는데 온 힘을 쏟게 되더군요. 왜냐하면 이제 좋은 소리에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흔한 오디오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그냥 컴퓨터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귀가 고급이 되어 듣기 힘들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익숙해져서 이 정도의 소리로도 충분히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로의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주님께 길들여지고 주님께 익숙해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주님께가 아니라 세상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를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사랑을 말씀하시고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던 예수님을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 역시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믿고 있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님께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세상의 기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기준으로 주님을 판단하고 단죄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주님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절대 혼자 내버려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 용기, 의지, 신념, 이런 게 늘 나와 함께 하는 것이지. 그러니 쓸쓸해도 용기를 잃지 마라(어니스트 섀클턴).
 요즘처럼 좋은 날... 어디든 훌쩍 가고 싶네요.
누가 바보일까요?
어느 마을에 바보 소리를 듣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바보라고 불리는 아이를 놀리기 위해서 50원짜리 동전과 100원짜리 동전을 놓고서 마음대로 집어가라고 하면 이 아이는 항상 50원짜리 동전만을 집어 드는 것입니다. 그때 동네 아이들은 어떤 동전이 더 좋은 것인 줄도 모른다면서 이 아이를 놀려 댔지요.
이런 아이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어떤 동네 어른이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얘야! 50원짜리보다 100원짜리가 더 큰 돈이란다. 100원짜리로 더 좋은 것을 살 수가 있으니까 다음부터는 100원짜리 동전을 집으렴.”
이 말에 아이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아~~ 저도 알죠. 하지만 제가 100원짜리를 집으면 동네 아이들이 다시는 그런 장난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저는 돈을 벌지 못하잖아요.”
어떻습니까? 누가 바보일까요? 바보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의 섣부른 판단들이 어쩌면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쯤 제주도에는 유채꽃이 한창이겠네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에서 옮김 (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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