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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르 10,17-27.
교회가 가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돌리는 것은 늘 쇄신의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지금의 교황님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하셨을 때 우리는 다른 설명 없이도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일이 전개될 것인지를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한 잡지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곧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으로 새 교황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그 기대가 어긋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이가 감동하면서 교황님의 행보를 바라보고 또 따르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된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교황님은 교황 선거가 끝난 뒤 가깝게 지내던 브라질의 한 추기경에게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는 간곡한 조언을 들었을 때, 바로 '가난'을 반려자로 삼으며 통회 생활을 했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모습이 교회 구석구석에 살아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기신 교황님의 생각은, 다름 아니라 복음의 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라 하겠습니다. 교황님의 이 다짐의 뿌리를, 연민 가득하면서도 단호한 예수님의 오늘 말씀에서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삶의 중심에 두는 가운데 재물을 홀로 소유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그들과 함께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신앙인의 길, 교회의 길에서 결코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단히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물론 가난을 선택하는 방식과 그 정도는 삶의 형태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분별력과 현명함을 마땅히 주님께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을 팔지 않는' 신중함에, 가난한 이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재물에 집착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할 수 있는 내적 자유와 결단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의 참뜻을 흐리게 하려는 마음이나 다름없습니다. - 매일미사에서 옮김(14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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