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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루카 16, 19 – 31 부자와 거지 라자로 사이에 건너갈 수 없는 구렁을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요? 저 구렁텅이만 없다면 부자도 죽어서 아브라함 품 안에 달려갈 수 있었을 텐데, 결코 건너갈 수 없는 구렁은 왜 생긴 것인지요? 아마도 거지 라자로가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볼 수 있듯, 살아 있는 동안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자신의 집 대문 앞 거지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대문 앞에서 음식 부스러기라도 먹고 살려는 거지와 그 자신은 이미 존재 자체부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의 눈에 라자로는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는 이렇게 깊고 넓은 구렁이 생겼습니다. 살아서 부자가 스스로 파 놓은 이 구렁텅이가 죽어서는 아브라함 품에 안긴 라자로에게 건너갈 수 없는 구렁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이와 철저하게 단절하며 살았던 부자가 죽어서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굶주리고 헐벗은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6 참조)라고. 우리가 가난한 이를 외면하고 산다면, 알고 보면 예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도 우리가 건너갈 수 없는 구렁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가난한 이들은 사실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에게 문을 닫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지 ‘라자로’는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는 뜻을 가진 구원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갇혀 있는 부자는 아무런 이름이 없습니다. 하느님도 그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0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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