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260412(일)-보지 않고 믿는 신앙이 필요합니다(빠다킹 신부)

두레골 2026. 4. 12. 06:55

2026년 4월 12일 부활 제2주일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클레이튼 M.크리스텔슨은 2007년 11월 심장질환으로 쓰러진 후 암과 뇌졸중을 연이어 앓게 되고, 교수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 능력 장애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속되는 불행에 한탄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상황과 불행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기의 문제와 욕구,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골몰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을 돕고 봉사하는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봉사하면서 남에게 사랑을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건강 문제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는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불행한 이유는 본인의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이 사랑 속에 있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행복이 저절로 내게 와서 살포시 앉아 있기를 바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제자들은 유다인들에 대한 공포로 스스로 문을 굳게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닫힌 문을 통과하여 그들 한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평화’로 회복시킨 완전한 구원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 자리에 토마스가 없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라는 말에, 증거를 요구하면서 믿지 않습니다. 철저히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드레 뒤에 다시 예수님께서는 방문하십니다. 토마스가 요구했던 증거를 정확히 짚어내시며,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요한 20,27)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나약함, 의심의 눈높이까지 기꺼이 내려오시는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는 예수님 상처에 손을 넣지 않습니다. 대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라고 외칩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오직 야훼 하느님을 부를 때만 사용되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의심 많은 제자의 입에서,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완벽하고 높은 차원의 신앙 고백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표징을 요구하면서 보고서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주님 안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주님 안에 머물며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주님과 함께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신앙을 갖추고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가장 소박한 것들에게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힘이 집을 행복하게 하고, 삶을 사랑스럽게 만든다(루이자 메이 올컷).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