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강의 중에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씀이 많습니다. 너무 추상적인 답이라며 구체적으로 말해보라 하면, 기껏해야 “돈 많이 벌어 잘 살고 싶다.”입니다. 이것이 과연 목표가 될 수 있을까요? 그냥 막연한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이 질문은 절대 간단하지 않습니다. 성장의 영역에서, 가족 관계 안에서, 직장과 삶의 터전 등 찾을 장소가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찾게 될 때,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선명한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이 목표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돈은 수단일 뿐, 삶의 목표나 목적은 절대 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돈이 목적이 되어 힘들게 사는 분을 보게 됩니다. 말씀마다 다 ‘돈’입니다. ‘돈’을 제외하면 삶의 의미가 사라질까요? ‘돈’ 때문에, 주님을 보지 못하고 그밖에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스승의 죽음이라는 충격과 절망을 안고 예루살렘을 등진 채 엠마오로 도망치듯 걸어갑니다. 신앙의 공동체를 떠나 상실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까이 가시어 함께 걸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런 영적 소경의 상태는 슬픔보다도 결정적으로 그들이 가진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해 줄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허무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부활의 소식에도 믿지 못하고 침통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십자가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예언자들이 예고한 구원 계획의 필연적인 과정이자 영광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비로소 영적인 눈이 완전히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 시간이 분명 날이 이미 저물어 위험한 밤길인데도 말이지요. 절망의 목적지인 엠마오를 버리고, 고난의 장소이자 사명의 자리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기쁨과 용기로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엠마오의 여정은 우리 각자의 신앙 여정입니다. 세상일이 어렵고 힘들다면서 주님께 벗어나 피난처인 엠마오로 가려고 합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바라보면서 중요한 가치를 찾지 못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면서 힘을 더해주십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늘 주님을 바라보도록, 함께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진정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이기심이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오스카 와일드)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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