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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1215(월)-자신의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빠다킹(조명연) 신부

두레골 2014. 12. 15. 08:06
2014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민수 24,2-7.15-17

그 무렵 2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4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5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6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7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다시 15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복음 마태 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신부가 되고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떤 분의 면담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은 저의 강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내용이 어렵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지요. 솔직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강론은 사제의 고유 영역인데, 이 고유 영역을 침범당하는 기분이었지요. 또한 초짜 신부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기분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분과의 만남을 마쳤지요.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계속해서 그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 것입니다.

밤에 양심성찰을 하면서 이분과의 만남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만났을 때 분명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밤 시간에 차분히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저의 강론에 대해서도 다시금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주석서 중심의 강론이었고, 제가 썼지만 제가 다시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저에 대한 이야기라 기분이 나빴지만, 그분은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저였던 것이지요. 이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니까 그 뒤로 강론 준비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쉽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다음 강론 때에 솔직하게 이제까지의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강론을 신자들 앞에서 인정했고,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뒤에 제게 강론에 대해 말씀해주셨던 그분과는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제가 했던 강론을 일일이 타이핑하셔서(당신이 들은 강론을 모두 적으셨더군요) 제게 선물로 주시더군요.

그때를 떠올리면서 만약 그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지금의 제 모습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새벽을 열며’ 묵상 글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단 한 번의 인정이 그분과의 관계도 좋게 되고, 제 자신의 성장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내가 틀렸어.’라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요.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솔함이 느껴져서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내가 틀렸다는 말은 용기 차원을 넘어서 ‘지혜’이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놀랍고 위대한 기적들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틀렸음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모른다.”라고 답변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느님의 외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애틋한 마음으로 약속을 나누었던 그 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잊지 않는 일이다. 그 마음은 그대로 간직하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일이다(황경신).



세 황금 문

데이 C 셔퍼트의 ‘세 황금 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세 개의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는 내용인데요.

그 첫 번째 문은 “그것은 참말인가?”

두 번째 문은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세 번째의 가장 좁은 문은 “그것은 진실한 말인가?”

이 세 개의 문을 다 통과했다면 그 말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염려하지 말고 크게 외치라고 하네요.

내가 쓰고 있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글이 아닌가 싶어서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참말, 필요한 말, 진실한 말을 하는 오늘을 만들어 보세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1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