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
40,25-31
25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28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29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30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복음 마태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말하는 노처녀가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늑대야. 난 절대 늑대 밥이 되지 않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남자들은 늑대라면서 멀리했던 그
노처녀가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발표를 한 것입니다. 친구들은 깜짝 놀라서 물었지요.
“절대 늑대 밥은 되지 않겠다고 해 놓고선
어찌 된 거야?”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늑대도 먹고 살아야지….”
아마 사랑에 빠졌나 봅니다.
사랑에 빠지면 자신의 기준보다도 상대방의 기준을 따르게 되지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나는 상대에게 누구인가'가 중요해진다고 말합니다. 시선이 바뀌는 것이며, 이로써 더욱 더 성숙하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기준이 아닌, 상대방이 기준이 되는 삶. 이 삶을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심일까요? 죽은 이를 다시 살리고, 아픈 이들을 고쳐주시는 치유의 능력일까요? 배고픈 이들을 배부르게 하는 능력인가요? 이런 것들을
배워야 세상 안에서 자신의 이름도 날리면서 또한 멋지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것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삶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터를 더욱 더 깊이 파야
하지요. 터를 전혀 파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을 짓게 되면 언젠가는 그냥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고 화려한 능력,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능력만을 통해서는 결국은 주님의 뜻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 겸손의 모범이
우리 삶 안에 기초로 자리 잡아야 하기에 당신의 온유함과 겸손, 주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도 얕고 좁게 자리 잡는
것이 아닌 깊고 넓게 자리 잡아야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 그럼으로써 참 기쁨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멍에고 편하고 그 짐이 가볍다고 했는데 왜 그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하셨을까요? 의로운 사람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는 어렵지 않지만, 죄로 물들어 있는 사람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봤을 때에는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지만, 주님의 기준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지킬 수 있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적당히 무거워 그것을
멘 이들에게 오히려 힘을 북돋아 줍니다. 따라서 주님의 멍에를 피하기보다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악의 불행이 찾아오면 최선의 가능성도 함께 온다. 불행과
절망을 겪지 않고는 만족된 삶을 얻을 수 없다9맥샤인 슈널).
처칠의 유머
처칠은 90세까지 장수했는데, 말년에 한 젊은 기자가 처칠을 인터뷰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내년에도 건강하게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처칠이 여유 있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내년에도 못 만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내가 보건데, 자네는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 내년까지는 충분히 살 것 같아...
걱정 말게나.”
처칠 수상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사용했다는 것은 유명합니다. 그런데 처칠이 사실은 감정의 기복이 너무나 컸던
조울증 환자였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 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유머였다고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특히 요즘은 더욱 더 고통과 시련에 눈물 흘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주님께서 주셨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도 웃으면서.... 파이팅~~~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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