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예레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복음 마태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1920년 미국 남부에서 출생한 존 그리핀이라는 흑인 인권
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는 백인으로 태어났으며, 더군다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가장 극심한 곳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인종차별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접하면서 똑같은 흑인 역시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흑인들은 종종 그에게 “당신이 우리의 피부 색깔로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와의 만남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핀은 자신의 피부를 검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약품과 염료, 방사선 등의 괴롭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결국 그의 피부는 흑인들처럼 검게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흑인들만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가서 흑인들이 겪는 차별을 경험하면서 그들과 똑같이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많은 고난과 위험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흑인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면서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헌신합니다.
결국 그리핀은 60세가 되어 피부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부를
검게 하려고 사용했던 약품과 염료 그리고 방사선에 의한 결과였던 것이지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똑같아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던 존 그리핀의 모습에 주님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주님께서도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시지 않았습니까? 즉,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인간이 받는 고통 이상으로 많은 시련과 아픔을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셨던 사랑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우리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셉 성인을 통해서 봅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진 약혼녀 마리아를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철저하게 율법을 따르는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천사가 지시한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전 재산을 쏟아 부어서 도박하라는 꿈을
꾸고서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꿈이 맞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 성인의 꿈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이 꿈을 따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인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 담겨 있는 사랑이라는 것. 그 사랑으로 충만한 오늘을 만들어 보세요.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사람을 썼거든 의심하지
마라(명심보감).
어떤 상처(‘따뜻한 하루’ 중에서)
한 보석 같은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모니카 셀레스. 만 17세이던 1991년 3월 당시 최연소로 테니스
세계1위에 등극했고 2년 사이에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8개나 차지했다. 모두가 그녀의 미래를 기대했다.
그러나 1993년, 경기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코트에 난입한 독일인 관객이 그녀에게 10인치 길이의 나이프를 휘둘렀다.
등을 찔린 사고. 육체의 상처는
오래가지 않았지만 셀레스가 받은 심리적 충격은 컸다.
이후 셀레스는 2년간 공백을 겪었고 예전과 같은 뛰어난 경기 성적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모니카 셀레스. 저 역시 기억하는 인물이네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매스컴에 자주 이름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더군다나 그때에는 테니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더 이 이름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보면서 한 사람에게 주는 상처 하나가 인생
전체를 바꾸게 할 정도로 치명적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혹시 그런 역할을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픔과 상처를 주는
역할이 아니라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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