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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9(금)-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12. 19. 09:57
2014년 12월 19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판관 13,2-7.24-25

그 무렵 2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4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6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5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복음 루카 1,5-2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몇 년 전, 일본에서 한 실패한 기업가가 자신의 실패담을 공개한 책을 내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부끄러울 수도 있는 실패를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출판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자신의 어두운 면을 공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자신의 잘한 것만을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패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실패와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실패와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실패와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그런 내가 되기란 정말로 쉽지가 않습니다.

야구공을 보면 꿰맨 흔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왜 야구공을 이렇게 꿰매서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을 많이 가졌지요. 그 의문에 대해 누군가가 이 꿰맨 흔적인 봉합선이 없다면 멀리 날아갈 수 없다는 대답을 해주시더군요. 이 봉합선으로 인해 공의 가속도를 높여 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도 봉합선에 해당하는 실패와 실수가 있습니다. 바로 실패와 실수들이 우리를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이는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백만장자 응답자의 80% 이상이 실패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몰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로써 나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패와 실수가 내게 없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실패와 실수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포기에 빠지지 않는 용기,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아마 주님께서도 이러한 우리를 원하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카르야의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지요.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너무 흘러서 아이를 낳기에는 둘 다 너무 늙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 이렇게 말하지요.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당시에 자녀가 없음은 실패라고도 불릴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그는 더 이상 하느님께 매달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불가능하다고 포기했기에 그는 하느님의 메시지조차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과 불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입을 막아버리십니다. 하느님 앞에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과 적극적인 용기가 분명 하느님의 일을 내 안에서 이룰 수 있게 할 것임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들만이 하느님의 커다란 축복과 은총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사람이 따뜻한 마음을 잃는다면 무엇보다는 그 자신이 인생이 외롭고 비참하게 된다(칼 힐티).



회장의 유서

학자요, 정치가요, 목사요, 주한 미국대사(1993-1997)였던 제임스 레이니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에모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던 어느 날,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는 노인을 만났다. 레이니 교수는 노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어 주었다. 그 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외로워 보이는 노인을 찾아가 잔디를 깎아주거나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2년여 동안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서 노인을 만나지 못하자 그는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고 노인이 전날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장례식 장을 찾아 조문하면서 노인이 바로 <코카콜라 회장>을 지낸 분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때 한 유족이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 라며 봉투를 건넸다. 유서의 내용을 보고 그는 너무나 놀랐다.

“2년여 동안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 주고, 우리 집 뜰의 잔디도 함께 깎아 주며, 커피도 나누어 마셨던 나의 친구 레이니! 고마웠어요. 나는 당신에게 25억 달러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너무 뜻밖의 유산을 받은 레이니교수! 그는

1. 전 세계적인 부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과
2. 자신이 코카콜라 회장이었음에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3.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잠시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큰돈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레이니교수는 받은 유산을 에모리 대학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제임스 레이니가 노인에게 베푼 따뜻한 마음으로 엄청난 부가 굴러 들어왔지만, 그는 그 부에 도취되어 정신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를 학생과 학교를 위한 발전기금으로 내놓았을 때, 그에게는 에모리 대학의 총장이라는 명예가 주어졌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떠올려 봅니다. 세상의 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평범한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계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겠지요. 그 결과 주님께서 주시는 무한한 은총을 누릴 수 없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내 이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