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루카 14,25-33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러한 어려운 작업을 피하지 말라고 촉구하십니다. 도시 빈민들의 벗이요 형제로서 평생을 살았던 제정구 바오로 씨(1944-1999년)가 이 말씀을 묵상한 글을 뒤늦게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3일의 묵상에서 언급했던 ‘빈민 운동의 대부’ 정일우 신부님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일한 그는,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양심으로 활동해 ‘깨끗하고 정직한 일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제정구 씨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것에 장애가 되는 것을 철저하게 버리는 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찾고자 하는 묵상 중에도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묵상에서든 실생활에서든 이런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일을 하고자 자신을 내어놓도록 결심할 때만이 예수님을 제대로 따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제정구 씨는 더 나아가 주님의 일을 하는 데 투신하는 사람도 그 일의 성공을 추구하며 사실은 ‘자아’를 만족시키는 차원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실 뿐 아니라 십자가가 ‘자기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묵상 글 일부를 옮겨 봅니다. “누구든지 자기 소유(‘나’ 또는 나의 그 ‘무엇’)를 모두 버리지 않는 사람, 즉 가난을 받아들이고 가난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열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야 비로소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져야 할 제 십자가의 의미가 밝혀진다. 즉 가난을 향해 자기 자신을 활짝 열 때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가난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제 십자가랍시고 짊어진 것은 ‘나의 그 무엇’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그 무엇이 없을 때 나에게 채워지는 것은 주님의 연민의 정이요, 이 연민의 정 때문에 질 수밖에 없는 모든 짐이 비로소 내 십자가가 되는 것이다” (『경향잡지』 1986년 9월 호에서). - 매일미사에서 옮김 (141105) |
'◐ † 사랑과 믿음 ◑ > 오늘의 기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41107(금)-오늘의 묵상(죽음의 성찰) (0) | 2014.11.07 |
|---|---|
| 131106(목)-오늘의 묵상(진정한 기쁨) (0) | 2014.11.06 |
| 141105(수)-제자의 조건 (0) | 2014.11.05 |
| 141104(화)-오늘의 묵상(가롤로 보로메오 성인) (0) | 2014.11.04 |
| 141102(일)-오늘의 묵상(하느님의 얼굴) (0) | 2014.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