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817(일)-굳은 믿음-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8. 17. 08:17
2014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 이사 56,1.6-7

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6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나의 계약을 준수하는 모든 이들. 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그들의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은 나의 제단 위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니,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제2독서 로마 11,13-15.29-32

형제 여러분, 13 나는 다른 민족 출신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민족들의 사도이기도 한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4 그것은 내가 내 살붙이들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 가운데에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15 그들이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었다면, 그들이 받아들여질 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어제 한국 가톨릭은 커다란 은총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한국의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이루어진 시복미사를 보면서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자기 자신보다도 주님을 더욱 더 사랑했으며,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앞설 수 없음을 복자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용수성당에 가면 하나의 배를 볼 수 있습니다. ‘라파엘 호’라고 하지요. 김대건 신부님께서 1845년에 사제 서품을 받으신 후 귀국을 위해 상하이에서 탔던 ‘라파엘 호’를 실제 크기로 복원한 배입니다. 상하이에서 우리나라까지 비행기로는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당시에는 육로를 통하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와야만 했었지요. 그리고 그 거리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문제는 그 엄청난 거리를 길이 13.5미터밖에 안 되는 널빤지로 만든 자그마한 배에 몸을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허술한 목선으로 자그마치 28일간이나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도착하셨던 것이지요.

어떻게 그러한 항해를 할 수 있었을까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가능했습니다. 그 뱃길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또한 이 조그마한 목선으로 바다를 건너기가 힘들어도 상관없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사랑으로 배에 몸을 맡기셨고, 배를 타고 조선에 들어오실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과거 순교자들의 피로써 세워진 교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굳은 믿음으로 지금 우리들이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들은 과연 지금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지금 현재 피의 순교는 없다 하더라도, 과연 내 자신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며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앞에 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자그마한 고통과 시련에도 쉽게 넘어지고, 세상의 것을 주님보다도 더욱 더 사랑하는 연약한 믿음을 간직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이방인인 가나안 부인이 예수님께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채도 하지 않으면서 무시하시지요. 계속 소리를 지르는 여인을 향해 오히려 강아지에 비유하여 모욕을 주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부인은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자신의 모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될 구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우리 순교자들이 보여주었던 그 모습을 따라 내 몸 전체로 주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두려움 없이 주님의 뜻에 맡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한 방울에 불과하다. 함께 모이면 우리는 바다가 된다(류노스케 사토로).


할머니와 은행

할머니가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갔다. 할머니가 찾을 금액을 본 은행원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금액을 적는 곳에 '전부'라고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원이 말하길...

"할머니, 이렇게 쓰시면 안돼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금액란을 고쳐서 다시 은행원에게 주었다. 그러자 은행원은 더욱 황당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금액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져 있었다.

'싹 다!‘

재미있는 이야기이지요? 주님의 날인 오늘, 기쁨 안에서 행복한 날을 만드세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