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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815(금)-하느님께 철저히 의탁하면서-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8. 15. 15:17
201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제1독서 묵시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9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났습니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2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제2독서 1코린 15,20-27ㄱ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복음 루카 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어느 한식집에 들어가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설렁탕이 나왔는데, 그 맛이 너무 싱겁더군요. 저는 소금이 담겨있는 조그마한 단지에서 한 스푼을 덜어 설렁탕 그릇 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간이 맞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넣은 것도 아닌데도 너무 짜서 결국은 물을 섞어서 먹을 수밖에 없었네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약간의 소금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약간의 것으로도 충분할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조그마한 비누 하나로도 며칠 동안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연필 하나라도 노트 한 권을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초라도 방 안을 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이 이 정도가 되어야 충분하다면서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약간의 것으로도 충분히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작은 것으로도 충분하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보이는 상황이 다가와도 감사할 수 있으며,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을 우리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에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친척인 엘리사벳을 만나 인사하자마자 찬양의 노래를 부르시지요. 사실 그 당시는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했던 순간,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사명을 받았던 순간, 앞으로 다가올 어마어마한 일들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철저히 하느님께 순명하시고, 하느님의 뜻에 맞춰서 사는 삶 안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삶이 오늘 우리들이 기념하듯, 죽음을 뛰어넘어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러 올라가시게 되는 ‘성모승천’이라는 영광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일보다는 세상의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의심하는 우리, 기쁨보다는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통해 불평불만을 멈추지 않는 우리……. 이러한 우리의 모습 안에서 과연 하느님의 영광이 이 땅에 환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철저히 의탁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는 기쁨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환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많이 버릴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는 커진다(김미나).


말을 건네지 않은 나무(‘좋은생각’ 중에서)

일본에 가뭄이 들자 한 남자가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돌며 “말라 죽지는 말아 주렴.”하고 부탁했다.

사실 그가 모든 나무에게 그랬던 건 아니다. 남의 밭이나 도로 경계에 있는 사과나무에겐 말을 건네지 않았다. 사과나무와 말하는 모습을 주위 농가에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말라 죽은 사과나무는 적지 않았다. 밭 여기저기에 메마른 사과나무가 서 있었다. 그런데 사과나무를 살피던 남자는 기묘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말라 죽은 사과나무는 일정하지 않았고, 장소에 따른 규칙도 없었다. 강한 사과나무는 살아남고 약한 사과나무는 말라 버렸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도미노를 쓰러뜨린 것처럼 한 줄의 사과나무만 죽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 일을 뼈아프게 후회한다.

그가 말을 건네지 않은 사과나무였다.

우리 곁에 말을 건네지 않는 사람은 없을까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뼈아프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모습이 바로 생명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니까요.

-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