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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루카 21, 28). 묵주기도 신비 중에, 고통의 신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왜 이 고통을 신비라고 할까? 아프고 힘들고 어렵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이 고통이 어떻게 신비가 되며, 우리는 왜 이 고통을 묵상하고 있는 걸까? 고통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삶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올라옵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 버린다면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신비인 이유는, 고통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제의 답변입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열매를 맺기에, 고통을 신비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마지막 날에 대해 들려주시며, 예수님께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라고 하실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날은 고통과 절망으로 끝나는 날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그 마지막 날-희망의 날을 고대합니다. 힘듬과 어려움이 그것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에게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땀흘려 일하는 농부 덕분에 곡식이 자랄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며, 성실히 일하는 부모 덕분에 아이들은 꿈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그러한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의 힘듬을 또한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는 모든 것 안에서 지쳐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11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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