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오늘의 기도·묵상

111011(화)-영산암 안뜰 붉은 영산홍(김상용 신부님)

두레골 2011. 10. 11. 08:1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나는 지금 내 영혼에 찾아온 고요에 잠겨 한 인간의 마음속 풍경을 들여다보면서 미소 짓고 있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그리운 고국에 돌아온 내가 맨 처름 한 일은 여행이었다. 이역만리의 타향살이 가운데 늘 나를 따라다녔던 것은 '매일미사' 책에 책갈피 삼아 끼워 놓았던 경북 안동의 '봉정사' 입장권이었다. 나는 그해 겨울, 미국 행을 막 앞두고 모처럼의 휴가를 받아 사찰 기행을 하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경북 안동시 서후면에 위치한 봉정사에 들렀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로케 촬영장소이기도 한 봉정사 암자, '영산암'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칼바람이 귓가를 에어서 간신히 산에 오른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위대한 동화작가인 볼프 에를브르흐의 '커다란 질문'이라는 동화책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었다. 나는 영산암 안뜰에서 봄을 못내 그리워하며 애타게 꽃망울을 틔우기 위해 생명을 갈망하는 암자 옆, 영산홍 가지 끝에 달린 애절함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봉정사 입장권이 마치 고국에서의, 당분간은 마지막이 될 무슨 중요한 증표라도 되듯 가지고 간 '매일미사' 책 사이에 소중하게 끼워 두었다.

나는 귀국 행 비행기 안에서 오랜 지기인 L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가난한 가장인 L은 나의 둘도 없는 친구다. 그가 보낸 촌스런 편지지에는 20여 년 전, 나와 함께한 여행을 추억하며 그 소회가 담담하게, 하지만 어떤 무상함이 혼접한 채 적혀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L과 나는 스물세 살 무렵, 보름간 남해를 여행했었다. 그때, 우리는 남해의 어느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며 허름한 선술집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긋기를 기다리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그는 문득 나에게, "이 삶이 폐허치고는 참으로 웅장하다...." 고 혼잣말처럼 지껄였다. 그만큼, 우린 그때 우울했었다.

L은 귀국하면, 꼭 한 번 자기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편지를 마치고 있었다. 나는 더 바빠지기 전에 L과, 아니 이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L의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해야겠다고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 다짐했다. 그리고 기내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나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매일미사'책을 꺼내들었다. 이국땅에서는 너무나 익숙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 옛날 봉정사 입장권이 떨리는 내 손 끝에서 파르르 기분 좋은 전율을 전해 주었고 나는 흐뭇한 미소로 어떤 상념에 젖어 들었다.

나는 고국에 돌아와서 나를 길러 준 이곳의 기운에 보답하느라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만나는 사물마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다. 새로 이사한 예수회 공동체 뒷산에 대고 그랬고, 맑은 여름날 뙤약볕을 고스란히 견디는 빨간 우체통에도 그랬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골목 안에서 노는 아이들에게도 그랬다. 나는 오래도록 나를 기다려 준 가족들과 수도회 형제들에게 간단한 귀국 인사를 마치고 L의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 밤새도록 운전을 해야 하는 직업인 L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운전대 잡는 것이 너무나 그리웠노라고 너스레를 떨며, 여행 내내 운전수 노릇을 했다. 자연히 L의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사장님이 된 것 같다며 나에게 '김 기사' 라고 불렀다. 나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는 경북 봉화가 고향인 L의 처가에 들러 여느 시골집이 그러하듯이 넉넉한 대청마루에 아무렇게나 앉아 여름 옥수수를 즐겼다. L의 처가인 유서 깊은 고택 뜰 안쪽으로 핀 노란 해바라기 꽃대는 야트막한 담장 너머가 못내 궁금했던지 하늘하늘 흩날리며 흙담 바깥을 향해 교태를 피우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L과 나는 넓은 평상 위로 모기장을 치고 그 안에 들어가 밤하늘을 보며 누웠다. 오래간만에 마신 술 탓에 취기가 올랐지만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의 별들과 은하수 무리들이 신비롭게 운행하는 광경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감격해하는 나의 몰입이 흐뭇했던지 친구는 한동안 말없이 밤하늘의 별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 친구 특유의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을 건네왔다.
"우리가 벌써 마흔이다....."

이튿날, 우리는 봉정사로 향했다. 근처 안동시의 위터파크라는 인공 파도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예상했던 L의 아이들이 불만을 표시하느라 나를 힐끔거렸다. 아이들의 기대를 깨고, TV 사극에서나 봄직한 사찰 건물로 온 가족을 인솔하는 '가정 파괴범(?') 혐의를 한몸에 받게 된 나는 머쓱해져서 L 의 아이들에게 가는 내내 주머니를 털어 그들이 원하는 바를 굽신거리며 채워 줘야 마땅했다. 봉정사 입구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 극락전"이라는 문구를 단 입장권을 샀다. 나는 그 사이에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뀐 봉정사 입장권 티켓을 받아 들고 새삼 신기해하며 절을 둘러보았다. 사찰 건물이 아이들에게 별로 흥미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에 L의 가족들은 일찌감치 산 아래로 내려가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나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영산암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국식 정원'이라고 평가받는 단아하기 그지없는 영산암 안뜰에 이르렀을 때,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신비로운 고요로 빠져 들었다. 이 고요는 내 영혼의 안 풍경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서 부끄러웠지만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활짝 핀 암자 안뜰의 영산홍의 붉은 꽃들이 세월을 머금은 퇴락한 누각의 바랜 단청 기와 지붕까지 그 법력을 다해 온화하게 연화의 세계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마침, 그 누구도 이 암자의 뜰에 초대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이 고요가 마련된 듯 주위는 충분히 내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수년 전, 겨울에 이곳에 들렀을 때 앉았던 바로 그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지니고 갔던 에를브르흐의 그 동화책을 옆에 끼고 있기라도 한듯이, 내 영혼에 다가온 이 고요가 마침내, 그 책이 그동안 나에게 끊임없는 화두로 던진 질문을 받아 비로소 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네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란다...."
이제 이 단순한 진리는 가까스로 내 것이 되었다.

그렇게 영산암 안뜰에서 나는 한동안 앉아 있었다. 영산홍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는 전심을 다해 나를 길러 준 이 세상 모든 기운을 향해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그 기운들은 나의 얼굴에 연화의 미소를 반영하며 화답했다. 나는 그제서야 나의 오랜 손님인 고요를 내 안에 초대해 단아한 마음으로 그녀 앞에 앉아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오자, 맑은 계곡물로 막 얼굴을 씻은 L의 가족들이 해인에 든 표정으로 나를 향해 물을 뿌렸다. 차가운 계곡의 물이 내 뺨을 적셨다. 비로소 나는 이 땅의 물로 축성된 사제임을 깨달았다. L의 가족과 같은 가난한 하느님 백성들의 이름으로 말이다.

- 2011년 10월 호 생활성서/김상용 신부님(예수회)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11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