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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태 5, 38 – 48 대개의 경우, 성당에 들어서면 정면 벽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는 침묵 속에 계신 예수님 고상이 온통 손과 발이 못에 박혀 꼼짝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뺨을 때리고 조롱을 해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로 계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 참 많습니다. 용서는 용서받을 이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청할 때 성립된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는 아직 아닙니다. 진정한 용서는 저렇게 십자고상의 모습처럼, 왼뺨을 때려도, 오른뺨을 때려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온전한 자기 비움의 상태입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바보가 되었을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용서가 어려운 것은 이렇게 자기 존재를 무화(無化)해야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당마다 십자고상이 걸려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 죄로 말미암아 상처 받으신 하느님께서 저렇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리 뱀을 쳐다보고 생명을 얻었듯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분 용서의 마음을 헤아릴 때, 상처 난 우리 마음에 새살이 돋고, 그분처럼 왼뺨도, 오른뺨도 내어 주는 바보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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