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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르 9, 2 – 13 도시에서 늘 셋방을 전전하며 사는 가난한 자매가 있습니다. 오십의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한 번도 제집을 가져 본 적이 없이, 재개발 공사에 밀려 여기저기 지하 단칸방을 옮겨 다닌 분입니다. 그분은 입버릇처럼, 어린 시절 가난하지만 이웃과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자신의 초가집이 그립다고 말합니다. 도시 생활의 고단함이 늘 그 자매의 표정 속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그 자매는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습니다. 그저 초막집이라도 좋으니 이리저리 떠날 걱정 하지 않고 어린 시절처럼 그렇게 걱정 없이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주석적 의미와는 다른 대답일 수 있지만, 그 자매의 묵상이 그 어떤 나눔보다 깊이 다가옵니다. 산 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을 체험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의 옷이 새하얗게 빛났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충만함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 황홀한 체험 안에서 베드로는 그곳에 주님을 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머리 둘 곳 없이 예수님을 따라 정처 없이 떠도는 고단한 삶을 멈추고, 초막이라도 지어 그 충만한 기쁨에 머물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자매가 어린 시절 가난의 그 고통과 초가집의 불편함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시절의 삶이 그리운 것은, 사실은 그 고향 집이 아니라, 마음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어떤 그리움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 그리움의 끝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있음을 잠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1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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