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오늘의 기도·묵상

100921(화)-다른 이를 위한 기도의 의미 (이수철 신부님/성베네딕도회)

두레골 2010. 9. 21. 10:56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통해야 산다. 살기 위해 소통해야 하고 소통하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지성, 감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영성이 함께해야 온전한 사랑이다. 영성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이다.
모든 삶의 이치가 똑같다. 불통으로 인해 줄줄이 이어지는 것은 불신, 불만, 불평, 불안, 불목, 불화다.
불통으로 인해 온갖 심신의 병이 생기고, 궁극엔 죽음에 이른다. 오늘날 화두는 단연코 소통이다.
그러나 너와 나의 수평적인 소통만으로는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 절대로 '깊이의 이해' 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여 주님 안에서 주님을 향한 수직적 차원의 '소통의 기도' 가 절대적이다. 소통의 중심에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느님과의 소통과 이웃 간의
소통을 상징한다. 십자가의 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주님을 닮아갈 때 소통이 완성된다.
그럴 때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생활이 가능해진다.

사실 예수님보다 완전한 소통의 모범도 없다. 평생 하느님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해 밤에는
외딴곳에서 기도하셨고 낮에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의 사랑 실천의 소통에 몸바치셨다.
사는 만큼 기도하고 기도하는 만큼 산다. 기도는 삶이다.
기도 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 없는 기도는 맹목이다. 우선적인 기도가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요, 그런 기도의 모범으로 수도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바치는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와 같은 공동전례기도가 있다. 사실 수도자들뿐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점차 보급되고 있는
것이 성무일도다. 온 몸,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찬미와 감사 기도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영혼에 찬미와 감사의 양 날개를 달고 창공을 훨훨 날게 하는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가
찬미와 감사의 기도다.


기도를 잘하기 위한 비결

기도를 잘 하는 비결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기술(테크닉)이 아니라 삶이요, 이론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하는 만큼 기도하고 기도하는 만큼 사랑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기도를 잘하게 되어
하느님과의 원활한 소통을 이룬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라는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대로의 삶이라면 기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진정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역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 것이다. 그대로 기도와 삶이 하나가 된 경지요 영성생활이 목표하는 바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며 이게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을 판가름하는 잣대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 연민의 사랑을 닮아 이웃을 저절로 사랑하게 되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는 둘째
큰 계명을 준수하게 된다. 사랑은 관심이기에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 도움을 준다. 물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영적도움의 기도 역시 사랑의 표현이다.


이웃을 위한 기도의 힘

얼마 전 피정을 다녀간 어느 자매가 여름옷과 더불어 보내 준 편지다.
"신부님, 날씨가 덥지요. 신부님 인도로 저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이 땅에 오래 사셔요. 그래야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잖아요.
허리 아프신 수사님 건강이 어떠한지요. 아무쪼록 세속에 살고 있는 저희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저희들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청하는 자세가 겸손이다. 사실 외국의 여러 수도원을 다녀 보면 게시판에 많은 수도회
형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의 쪽지가 가득 붙어 있음을 본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진정 하느님을
믿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이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더불어
이웃 사랑의 자연스런 표현이 이웃을 위한 기도이다. 함께 기도해도 좋고 홀로 기도해도 좋으나
함께하면 더욱 좋다.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 주님도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아우성이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삶의 짐이 너무 무겁다.
기쁨은 나누면 늘어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 함께 기도하며 어려움을 나눌 때 하느님께서도
큰 위로와 힘을 주신다. 그리고 삶의 짐도 가벼워지고 이기적인 나로부터 벗어나면서 자유로워진다,
이웃의 어려움에 동참하면서 서로 간의 영적 유대도 견고해진다. 어느 자매의 고백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도 내용의 판단에 앞서 절박한 심정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저희들은 매주 수요일에 기도 모임을 갖습니다. 8-9명이 여러 곳에서 오는데 각자의 집을 돌아가며
기도 장소로 내놓습니다. 밤 10시 쯤 시작해서 약 3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성가를 부르고 말씀을 나눈 후
하느님의 뜻을 묵상하고 이어 서로의 가정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이번에 방문한 형제 집의
기도 내용은 이혼한 아들 내외의 재결합이고 PC게임 중독이 된 작은아들이 악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기도는 간절하고 절실할 수밖에 없다. 주님 역시 말씀하신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루카 11, 9-10)
혼자의 청원보다는 여럿이 함께 마음을 다해 청하는 기도가 힘이 있다. 하느님은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당신 최상의 방식'에 따라 '당신의 때'에 '어떤 형태'로든 응답하신다.
어떤 경우에든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웃을 위한 다양한 기도들

굳이 이웃을 위한 기도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성무일도, 미사,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등을 드릴 때에
이웃의 필요를 담아 기도로 바치면 된다. 나는 오전 중에 만났거나 생각난 분들을 위해서는 낮기도 성무일도에,
오후에 만났거나 내 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분들은 저녁 성무일도에 담아 봉헌한다. 그리고 간혹 생각나는
분들이 있으면 그분들을 위해 성호경을 긋고 '주님, ○○○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화살기도를 바친다.
이웃을 위한 기도의 절정은 미사다. 미사 경문 중 '저'나 '저희'라는 대목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정성껏 미사를 봉헌한다. 그러니 성무일도와 미사, 그밖의 모든 기도가
간절하고 절실할 수밖에 없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이웃을 위한 기도방법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느님과 수직적 소통을, 이웃과의 수평적 소통을 상징한다.
이 소통의 중심에 살아 계신 십자가의 주님이 계시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찬미와 감사 기도로
하느님과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며, 이어 이웃과의 사랑의 실천인 소통에 전념할 것이고 저절로 이웃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섬이 아니다. 하느님 안에서 서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간의 사랑을, 기도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살 길은 단 하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표현이 기도다. 그러니 매일, 평생,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그리고 이웃을 위해 기도를 바칠 일이다.

- 이수철 신부님.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장/ 생활성서 10월호 에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