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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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60509(월)-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 포용하는 사랑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6. 5. 9. 08:30
 
2016년 5월 9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독서 사도 19,1-8

1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2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4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7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8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복음 요한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29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가끔 인터넷을 통해서 초등학생들의 엉뚱하고도 기발한 답이 적힌 시험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도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하나의 답안지가 있습니다. 빈칸을 채워서 속담을 완성하는 국어 시험이었던 것 같은데, 그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 ***.

정답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답은 ‘배가 아프다’이지요. 내 주변의 누군가가 잘되거나 일이 잘 풀리게 되면 셈이 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초등학생은 아주 뜻밖의 정답을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보러 간다.

아주 뜻밖의 답이지요. 그런데 왜 ‘보러 간다.’라고 하면 틀린 답일까요? 어쩌면 배가 아파서 가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촌이 땅을 샀으니 축하하러 보러 가는 것이 더 인간적으로 맞는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어떤 정해진 틀에서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즉, 고정관념에 쌓여 있어서 ‘틀렸다. 할 수 없다.’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지 않은 것뿐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바로 이렇게 인간세상의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것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 등은 도대체 지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름으로 인해 마음이 시커멓게 변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마 주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라고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이어서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법칙보다 주님의 법칙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이지요. 겉으로 볼 때에는 주님이 진 것처럼 보였지요. 가장 나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모든 악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인간세상의 정해진 틀에 짜인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유로운 주님의 법칙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법칙은 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 포용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괜히 손해 보는 것 같고 또 실제로 상처도 많이 받지만, 주님께서는 부활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을 따름으로 인해 진정한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행운이다. 행운을 못 잡고는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재클린 케네디 오네시스).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한지공예.


살아 있는 동안은 날마다 축제(‘딩동, 사랑이 도착했습니다.’ 중에서)

혹시 죽고 싶은 마음이 든 적 있으세요? 만약 그런 생각이 들 때엔 우선 하루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말아 보세요. 배고파 죽습니다.

죽지 않았다면 이번엔 앞선 하루 동안 못 먹었던 음식을 쌓아 놓고 실컷 먹어 보세요. 배 터져 죽습니다.

이 방법도 안 통하면 하루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보세요. 심심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으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에 맞서서 두 배로 일해 보세요. 힘들어 죽습니다.

아직 안 죽었다고요? 500원만 투자해서 즉석복권을 사세요. 그리곤 긁지 말고 바라만 보세요. 잠시 후 죽을 듯 말 듯 할 때 긁어 보세요. 반드시 꽝일 것입니다. 그러면 열 받아 죽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면 홀딱 벗고 거리로 뛰쳐나가 보세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일수록 좋습니다. 창피해 죽습니다.

이상의 방법으로도 죽을 수 없다면 아직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세상은 날마다 축제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분명히 남아 있는 것 같죠? 그 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망설이지 말고 행하십시오. 분명히 날마다 축제의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예쁜 꽃. 다 의미가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