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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60507(토)-불신과 의심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6. 5. 7. 07:55
 
2016년 5월 7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독서 사도 18,23-28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복음 요한 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예전에 본당신부로 있을 때 있었던 일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사무실에 도둑이 든 것입니다. 사무실 문을 완전히 부셔놓았고, 사무실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 안에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 도둑은 사무실 옆의 커피자판기를 뜯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동전을 모두 가져간 것입니다.

솔직히 잃어버린 돈은 얼마 없었지만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지요. 더욱이 사무실 문을 새롭게 달고, 커피자판기를 고치는 데에 꽤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성당에 낯선 사람들만 보이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됩니다. 혹시라도 도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새로 성당을 찾는 분들을 열렬히 환영해도 부족할 판에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할 때도 생각납니다.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제 동창신부가 이곳은 소매치기가 많은 곳으로 아주 유명하다면서 특히 가방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길거리를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혹시 도둑이 아닐까, 내 가방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의 의심이 계속 생기는 것입니다. 이 여행이 어떠했을까요? 뒤에 생각해보니 가방만을 꽉 움켜잡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의심을 하는 순간, 그 순간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신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없으며,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저의 모습처럼 의심을 통해서는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100%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어야 나 역시 이 안에서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 대해서도 불신과 의심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주님께로 연장된 것이지요.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정말로 주님께서 지켜주실까? 나보다 저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것은 아닐까?’ 등등의 이러한 불신과 의심들이 주님께 제대로 청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들에게 주신 이 세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사람은 100% 믿을 수 없지만, 주님은 100%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심을 모두 내려놓고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하십시오. 분명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공의 대부분은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동요하는 가운데 놓치고 만다(윌리엄 베넷).


이탈리아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입니다.


너무나 비싼 나

책을 보다가 프랑스 화가인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샘’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작품이었는데 도대체 예술 작품처럼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샘’이라는 작품이 176만 달러, 한화로는 20억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된 것입니다.

‘샘’이라는 작품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글쎄 화장실 변기통 하나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샘’이라고 이름 붙이다니……. 더군다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작품이 20억 넘는 가격으로 낙찰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화장실 변기를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전시한다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바로 마르셀 뒤샹의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변기를 진열해 놓으면 누가 사가겠습니까? 유명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주님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르셀 뒤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높으신 분입니다. 그 주님께서 만드신 나의 가치는 어떨까요?

스스로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엄청나게 비싼 몸입니다. 주님께서 만드셨으니까 말입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