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60502(월)-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으면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6. 5. 2. 08:27
 
2016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 사도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복음 요한 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입니다. 자신을 30대 처자라고 밝힌 이 분은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랐을 때 겪은 일을 올렸습니다. 당시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차의 한쪽에 마련된 노약자석의 6자리 중에서 4좌석이 비어 있더래요. 너무 힘들었던 이 자매님은 어르신이 오시면 자리를 비켜줄 요량으로 노약자석에 앉았습니다. 잠시 뒤에 어르신 한 분이 타셨고, 자매님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이 어르신이 “자리 많은데 그냥 앉아.”라고 말씀하셨고, 건너편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래요.

“요샌 젊은 사람들이 더 힘들어. 힘들게 돈 버느라....”

그리고 또 다른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젊은 애들이 힘들게 돈 벌어서 세금 내는 것으로 노인들이 사는 거야. 우린 고마워해야 해.”

이렇게 배려해주시는 어르신들의 마음에 글쓴이가 감동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이 글을 본 사람들 모두가 훈훈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지요.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이렇게 배려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아픔과 상처를 주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세상처럼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하는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솔직히 봉사활동을 포기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대부분이 이 안에서 얻은 아픔과 상처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행동인데 왜 욕을 먹고 거부당하면서까지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꿋꿋하게 봉사활동을 계속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남들보다는 주님의 시선을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많이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주님의 시선이 아닐까요? 좋은 마음과 좋은 행동들이 사람들에게 거부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마음과 행동을 거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진리의 영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진리의 영인 성령이 우리의 보호자라고 하시지요. 왜 보호자라는 호칭을 쓰신 것일까요?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마음으로부터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서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시선에 맞추는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아픔과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았던 순교자분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순간의 아픔과 상처에 굴하기 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아픔과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으면 합니다. 바로 그때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된 순간이겠지요?

당신의 친절한 행동이 준 유쾌함은 곧 자신에게 돌아온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자를 얹어 오기도 한다(아담 스미스).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 주교.


어른들만 낳은 할머니

유치원생인 손주가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도 아기를 낳아보셨어요?”

이 질문에 할머니는 “그럼, 네 아버지도 내가 낳았고, 큰아버지, 고모, 삼촌 모두 이 할머니가 낳았단다.”라고 대답하셨지요. 그러자 손주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다 어른만 낳았어요?”

이 아이가 보기에는 다 어른만 낳은 것으로 보였겠지요. 자기 기준대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아이의 모습처럼 자기 기준대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답답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꽉 막힌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뻥 뚫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 예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