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60127(수)-내 영혼의 밭을 비옥하게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6. 1. 27. 06:33
2016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2사무 7,4-17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7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하겠다. 15 그러나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7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복음 마르 4,1-2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언젠가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집에 와서 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입니다. 얼른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카드 분실신고를 한 뒤에 혹시나 몰라 집 안 전체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갑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돈도 아까웠고, 카드와 신분증을 재발급 받기 위해 할 수고를 생각하니 귀찮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아까움과 귀찮음을 모두 감수해야만 하겠지요.

다음 날 새벽이었습니다. 묵상을 하다가 새벽 묵상 글에 쓸 좋은 글귀가 생각난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묵상 글을 쓰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묵상을 통해 생각해 둔 좋은 글귀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불과 30분 전에 기억했던 것을 잊어버린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 지요. 한참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다른 내용으로 묵상 글을 썼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전날에 잃어버렸던 지갑에 대해서는 아까워하면서, 잊어버린 좋은 묵상거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비록 부족한 묵상이지만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잃어버린 지갑의 가치보다 훨씬 값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갑은 아까워하면서도, 잊어버린 묵상은 더 값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까워하지 않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더 값진 것은 소홀히 하면서 별 것 아닌 것들에 연연하고 있었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즉, 세상 것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하늘 나라의 씨앗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길, 돌밭, 가시덤불과 같다고 하시지요. 사실 주님께서는 인간 영혼의 밭에 육화하시어 우리 인간 본성 안에 당신 말씀의 씨를 뿌리십니다. 문제는 그 씨를 받는 우리의 영혼의 밭이 어떠한가 입니다.

세상 것에 얽매여 있으면 그 좋은 씨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이 주님의 말씀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밭을 비옥하게 만들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내 영혼의 밭을 비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계명인 사랑 이라는 비료를 통해서만 비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값진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의 밭을 잘 가꿀 수 있습니다.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문을 열어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우리 자신, 그리고 삶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마이클 J.로즈).


자비의 희년에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성지인 갑곶입니다.


눈을 쓸면서…….

어제 아침, 제가 있는 갑곶순교성지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쌓이는 눈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세상을 하얗게 만드는 눈을 보면서 ‘예쁘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길이 미끄러워서 순례객들이 힘들겠다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눈을 치우는데 힘들겠다는 생각도 생깁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갖고 아침식사 후, 성지 직원들과 함께 넓은 성지의 곳곳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눈을 치우니 힘이 들면서 땀이 조금씩 나옵니다. 그러나 마음은 기뻤습니다. 약간의 수고로 순례객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순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기쁨이 더 커지더군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내가 억지로 해야 할 ‘일’로만 여긴다면 그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얻을 무엇인가만을 떠올려도 기쁨은 함께 할 수가 없겠지요.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삶 안에서 얻는 것은 분명히 더 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보다는 나를 위한 삶을 더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세상의 것을 더 얻으려는 욕심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그 일 안에서 내가 아닌 남을 위한 ‘무엇’을 찾는다면 어떨까요? 삶 자체가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갑곶성지에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6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