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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1118(수)-더욱 더 주님의 뜻에 충실히... -빠다킹 신부

두레골 2015. 11. 18. 10:30
2015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2마카 7,1.20-31

그 무렵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0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21 그는 조상들의 언어로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하였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찬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22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23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24 안티오코스는 자기가 무시당하였다고 생각하며, 그 여자의 말투가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워하였다. 막내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임금은 그에게 조상들의 관습에서 돌아서기만 하면 부자로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며 벗으로 삼고 관직까지 주겠다고 하면서, 말로 타이를 뿐만 아니라 약속하며 맹세까지 하였다.
25 그러나 그 젊은이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그 어머니를 가까이 불러 소년에게 충고하여 목숨을 구하게 하라고 강권하였다.
26 임금이 줄기차게 강권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하였다. 27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을 기울이고 그 잔인한 폭군을 비웃으며 조상들의 언어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아,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는 아홉 달 동안 너를 배 속에 품고 다녔고 너에게 세 해 동안 젖을 먹였으며, 네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기르고 키우고 보살펴 왔다.
28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29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30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젊은이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오? 나는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소. 모세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주어진 법에만 순종할 뿐이오. 31 히브리인들을 거슬러 온갖 불행을 꾸며 낸 당신은 결코 하느님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복음 루카 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우연히 텔레비전에 드라마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아이가 부모가 미워서 삐딱하게 사는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으며 잘 살기를 너무나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서 부모를 원수 보듯이 바라보며, 그래서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을 심지어 범죄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도 어떤 아이 한 명이 떠올려졌습니다. 부모가 너무 미워서 부모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사고를 치는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고를 치는 문제아가 되면 과연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올까요? 점점 악의 세계에 빠지면서 스스로를 망칠 뿐입니다. 사실 도저히 용서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스스로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살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스스로를 망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망치면서까지 복수하겠다는 것, 이것이 과연 진정한 복수가 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삐딱한 길로 걸어가는 우리들을 향해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길을 걸어갈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주님의 요구에 우리는 못 본 척 외면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미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그 비유 말씀을 보면서 종이 받은 보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종은 주인이 원하는 것만을 해야 합니다. 특히 주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주인이 받은 이익과 종이 받은 이익 중에 누가 더 많은 이익을 보게 될까요? 당연히 주인이 받는 이익이 더 많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을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주인인 귀족은 어떤 이익도 없습니다. 벌어온 미나의 양에 따라서 마을을 다스릴 권한을 주고 있으며, 주인이 주었던 미나도 빼앗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종의 미나를 빼앗아 자신의 재산을 메꾸는 것도 아니라 가장 많이 미나를 벌은 종에게 건네줍니다.

바로 이런 분이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미나를 나눠주시는 것은 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주님의 요구에 얼마나 응답하고 있었을까요?

주님의 요구에 응답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주님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참 행복의 길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러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진다(로저 로젠브리트).


대전교구의 부여성당입니다. 아는 선배신부님이 계셔서 놀러왔습니다.


잘 선택해야 합니다.

밤늦은 시간,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총알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총알택시답게 너무 빨리 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시기사에게 말했지요.

“아저씨, 속도를 좀 줄여주세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합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요.”

공포에 쌓인 손님은 어떻게 하냐면서 그러면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서우면 저처럼 눈을 감으세요!”

눈을 감았다고 해서 이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더 두 눈을 부릅뜨고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위험이 찾아옵니까? 그때마다 눈을 꽉 감으면서 포기하겠습니까? 아니면 더욱 더 그 위험을 바라보면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선택의 몫은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낙화암에서 바라본 일몰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