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1003(토)-감사의 기도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5. 10. 3. 07:33
2015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제1독서 바룩 4,5-12.27-29

5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6 너희가 이민족들에게 팔린 것은 멸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너희가 하느님을 진노하시게 하였기에 원수들에게 넘겨진 것이다. 7 사실 너희는,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제사를 바쳐, 너희를 만드신 분을 분노하시게 하였다. 8 너희는 너희를 길러 주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너희를 키워 준 예루살렘을 슬프게 하였다.
9 예루살렘은 너희에게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들어라, 시온의 이웃들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큰 슬픔을 내리셨다. 10 나는 영원하신 분께서 내 아들딸들에게 지우신 포로살이를 보았다. 11 나는 그들을 기쁨으로 키웠건만, 슬픔과 눈물로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12 과부가 되고 많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나를 두고, 아무도 기뻐하지 말아 다오. 나는 내 자식들의 죄 때문에 황폐해졌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멀리하였다.
27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 이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너희를 기억해 주시리라.
28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29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복음 루카 10,17-24

그때에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선배 신부님께서 제게 “밥은 잘 해 먹고 사니?”라고 묻습니다. 저는 자신 있게 말하지요.

“제가 얼마나 밥을 잘 하는데요? 저 잘 먹고 삽니다.”

그런데 어제 전기밥솥에 밥을 하려다 말고 문득 누룽지가 있는 밥을 하고 싶었습니다. 전기밥솥으로는 누룽지가 도대체 생기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냄비에다가 쌀을 넣고 물을 부어 밥을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누룽지가 생기기는 했지만 밥이 설익은 것입니다. 밥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맛난 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전기밥솥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종종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잘 나서, 나의 능력이 뛰어나서 일을 잘 할 수 있던 것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데도, 무조건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나 때문에 잘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어느 성당에 강의를 다녀왔는데 제 생각에도 반응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의 끝나고 돌아가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성당 입구에 서 있는데 거의 모든 분들이 강의 잘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문득 들은 생각은 ‘이렇게 강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없다면 과연 강의를 할 수가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내가 사제가 아니라면 이렇게 성당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강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제가 잘 나서가 아니라, 이런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주신 주님이 계시고 부족한 강의를 들어주시는 분이 계시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제 멋에 취해있었던 적이 있었던 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주님 앞에 전교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이 기쁨에 차서 자신들이 했던 일들을 자랑스럽게 보고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으쓱했나 봅니다. 하긴 부족한 자신들의 힘으로 힘센 마귀를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는 경험을 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뻐하지 말고, 주님의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시지요. 자신의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했다는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이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도 이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하늘에 나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일을 더욱 더 즐겨야 한다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겼다는 기쁨보다는 주님의 일을 함으로써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 역시 주님께서 바치셨던 감사의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이란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삶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나머지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바로 이때 필요한 한 가지는 물론 다른 모든 것이 주어진다(토마스 머튼).


어제는 외식했습니다. 메뉴는 칼국수.


실연당한 여인

실연당한 여인이 길에서 울고 있었다. 한 철학자가 이유를 알고 위로하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너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잃은 것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왜 괴로워하는가? 지금 가장 괴로운 사람은 누구겠는가?”

여인이 울음을 그치고 미소 짓자 철학자가 말했다.

“그래도 가장 괴로운 건 너^^ ”

그렇지요. 사랑의 아픔은 그 누구도 대신하기 힘듭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아픔보다도 클 것입니다. 하지만 위 철학자의 말처럼, 생각의 전환을 통해 조금이나마 줄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 상대방은 사랑해주는 사람 하나를 잃었고, 나는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 하나를 잃었다는 생각.

생각의 전환을 통해 삶을 보다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 바꾸기가 참 쉽지는 않네요.


어제 강의갔던 성당 제의실에 계신 성모님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