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0930(수)-하느님의 일이 먼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5. 9. 30. 07:46
2015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느헤 2,1-8

1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 제이십년 니산 달, 내가 술 시중 담당이었을 때, 나는 술을 가져다가 임금님께 올렸다. 그런데 내가 이제까지 임금님 앞에서 슬퍼한 적이 없기 때문에, 2 임금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어째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느냐? 네가 아픈 것 같지는 않으니, 마음의 슬픔일 수밖에 없겠구나.”
나는 크게 두려워하면서, 3 임금님께 아뢰었다. “임금님께서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제 조상들의 묘지가 있는 도성은 폐허가 되고 성문들은 불에 타 버렸는데, 제가 어찌 슬픈 얼굴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4 그러자 임금님께서 나에게,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기에, 나는 하늘의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5 임금님께 아뢰었다.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그리고 이 종을 곱게 보아 주신다면, 저를 유다로, 제 조상들의 묘지가 있는 도성으로 보내 주셔서, 그 도성을 다시 세우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6 그때에 왕비께서도 옆에 계셨는데, 임금님께서는 “얼마 동안 가 있어야 하느냐? 언제면 돌아올 수 있겠느냐?” 하고 나에게 물으셨다. 임금님께서 이렇게 나를 보내시는 것을 좋게 여기셨으므로, 나는 임금님께 기간을 말씀드렸다.
7 나는 또 임금님께 아뢰었다. “임금님께서 좋으시다면,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관들에게 가는 서신 몇 통을 저에게 내리게 하시어, 제가 유다에 다다를 때까지 그들이 저를 통과시키도록 해 주십시오. 8 또 왕실 숲지기 아삽에게도 서신을 내리시어, 하느님의 집 곁 성채의 문과 도성의 벽, 그리고 제가 들어가 살 집에 필요한 목재를 대게 해 주십시오.”
내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손길이 나를 보살펴 주셨으므로, 임금님께서는 내 청을 들어주셨다.


복음 루카 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어렸을 때 읽었던 중국 동화 한 편이 생각납니다. 어떤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신비스러운 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동자 두 명이 바둑을 두고 있었지요. 바둑을 보면서 또 그들이 주는 것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끼를 집으려고 하는데 자신의 도끼 자루가 썩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상한 일도 있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글쎄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글쎄 자신이 집을 나선지 벌써 700년이 지난 것입니다. 자신의 갓난아기는 벌써 세상을 떠났고 7대조 후손 역시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깜짝 놀라는 그 순간, 자기 머리 역시 하얗게 세어 버리지요.

이 동화가 문득 생각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 편안한 무릉도원을 원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 세계만 추구하면 도끼 자루가 썩는 것처럼 현실적 삶에 충실할 수 없으며, 어느 한 순간 갑작스럽게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음을 이 동화는 우리들에게 경고합니다. 즉, 정신을 차렸을 때는 더 이상 삶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인 것이지요.

바로 지금의 내 자리를 무릉도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의 자리가 하느님 나라이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인 것을 모르면서 불평불만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완성을 위해서 매 순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매 순간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주님의 뜻에 맞춰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헛된 무릉도원을 꿈꾸다가는 후회할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를 따라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한 명은 아버지의 장사를 허락해 달라고 하고, 또 한 명은 작별 인사를 허락해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하시지요. 아버지의 장사도 또 작별 인사도 허락하시지 않는 매정하신 모습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장사지내고 작별 인사를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하느님의 일이 인간의 일보다 먼저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봐서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하느님의 일을 뒤로 미루다가는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헛된 일이 가득한 세상이 무릉도원이라고 착각하면서 온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 나라만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곳임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일이 먼저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기의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영웅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진실하게 수행한다면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영웅입니다(헤르만 헤세).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예로니모 성인.


행복한 사람.

지난 달, 허리 때문에 꽤 고생을 했습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허리가 아파도 운동을 심하게 했는데, 그 심한 운동이 더 허리를 안 좋게 만들어서 왼쪽 다리 전체에 큰 통증까지 가져왔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병원을 가니 모든 운동을 멈추고 걷기만 하고 무조건 쉬라고 합니다.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많이 걷고 푹 쉬었습니다. 하지만 걷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한 발을 내 딛을 때마다 왼쪽 다리에 전해지는 통증으로 쩔뚝거리며 아주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횡단보도의 신호가 너무 짧은 것입니다. 파란불이 켜져서 절름거리며 걷는데 미처 건너기 전에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어 버립니다. 마음은 급해지고 서두르니 통증은 더 심해지고 저 때문에 출발 못하는 운전자들에게도 너무 미안합니다.

횡단보도를 잘 건너는 것 역시 커다란 축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일상 삶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순간이 모두가 축복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일상 삶을 조금만 깊이 바라보면 분명 주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손길을 찾는 것, 우리의 삶 안에서 커다란 보물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 손길을 찾은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횡단보도를 잘 건너는 것도 은총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