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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50214(토)-부족함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5. 2. 14. 08:58
2015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제1독서 창세 3,9-24

9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6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복음 마르 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여러 차례 단식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짧게는 삼일, 길게는 보름까지 단식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보름 동안의 단식이 삼일 동안의 단식보다 훨씬 힘들 것 같지만,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거의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단식 삼일 째가 가장 배고프고 많이 지쳐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날만 잘 넘기면 일주일, 보름까지도 단식이 가능하더군요.

단식을 하게 되면 후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냄새를 못 맡던 것인데, 단식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냄새들이 우리 곁에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심지어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도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쉽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크게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단식을 하게 되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음식들도 얼마나 먹고 싶던 지요. 그동안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었기에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부족했을 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으며, 부족했을 때 지금까지의 내 삶 안에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족함의 상태가 어쩌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긴 과거 교부들은 일부러 단식을 했고, 고행을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 이유는 바로 부족함 안에서 주님을 더욱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관한 내용입니다. 일곱 개의 빵과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서 사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는 기적이지요. 그런데 이 기적의 시작은 바로 사흘 동안이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주님 곁에 머물렀을 때라고 전해줍니다. 광야에서 허기지셨던 적 있는 육화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생명의 빵으로 인간을 먹이시는 장면을 보여주지요. 이 모습은 교회가 받을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지요. 거룩한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나누어 먹는 사람은 영적 허기를 느낄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채우려고만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당연히 주님의 은총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주님의 거룩한 말씀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나누어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아닌, 주님 안에서만이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음을 기억할 때 나의 삶은 보다 더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으면 누워서 걱정하지 말고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라.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다(데일 카네기).


15년 전 보좌신부로 있을 때의 고등학생이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고 어제 왔네요. 시간의 빠름을 다시 느낍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최천호, 좋은 글 중에서)

아주 옛날 산골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는 배가 고파 온 종일 우는 게 일이었다. 아기의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회초리로 울음을 멎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를 맞았다.

그날도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매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집 앞을 지나던 노스님이 그 광경을 보고 집으로 들어와서 매를 맞고 있는 아이에게 넙죽 큰절을 올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부모는 의아해서 스님께 물어보았다.

“스님은 어찌하여 하찮은 아이에게 큰절을 하는 것입니까.”

이에 스님은 “예 이 아이는 나중에 만인지상 일인지하인 정승이 되실 분입니다. 그러니 곱고 귀하게 키우셔야 합니다.”하며 자리를 떠났고, 아이의 부모는 그 후로 매를 들지 않고 공을 들여 아이를 키웠다.

훗날 아이는 정말로 영의정이 되었다. 부모님은 큰 스님 안목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스님을 찾아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님을 찾기로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큰스님을 찾았고. 스님에게 궁금함을 여쭈어 보았다.

“스님 우리 아이가 스님의 말씀처럼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어찌 그리도 용하신지요.”

스님은 웃으시며 차를 한 잔씩 권하며 말문을 여셨다.

“이 돌중이 어찌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마는 세상의 이치는 하나이지요.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아이를 정승같이 귀하게 키우면 정승이 되고.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되지요.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지요. 세상을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마음가짐에 있지요.”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런 마음을 통해서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죠. 단순히 초콜릿의 나눔을 생각할 것이 아닌, 사랑의 나눔을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1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