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욥
19,1.23-27ㄴ
1 욥이 말을
받았다. 23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25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26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27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제2독서 로마
5,5-11
형제 여러분, 5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 마태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몇 해 전 대학입시에 79세, 77세의 할머니가 도전,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들에게 지금의 나이가 결코 적지 않은데,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학공부를 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더 나이 들어 시작하면 늦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정도의 나이라면 너무 늦어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할머니들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바로 지금이 가장 빠른 때라고 생각하신 것이지요. 또 이런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100세가 되신 할아버지께서 백내장 수술을 하셨습니다. 가족과 친척들은 그 연세에 위험하게 무슨 수술이냐고 말렸습니다. 그러자 이
할아버지께서는 단호하게 “이봐, 이런 건 지금처럼 젊을 때 해놔야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100세라는 나이가 이 할아버지의 남은 삶
안에서 가장 젊은 때라는 것입니다. 연세 높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야기하다보니 이런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105세 되신
할머니께서 텔레비전에 출연하셨습니다. 사회자가 “할머니, 여기 출연하셨기 때문에 출연료가 나오거든요. 이 출연료 나오면 어디에 쓰실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할머니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노후를 위해서 모아 놔야지.”라고 대답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이미 늦어 버렸습니까? 아니면 무엇인가를 행동하기에 충분한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지금 가장 젊은 때를 살고 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지금 행하기에 가장 빠른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갈 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할 수 없다’는 핑계들을 최소한 몇 개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지금 해 봐야 뭐해?’ 등등의 핑계가 사라질 때, 우리는 지금의 삶을 충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을 위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만 기도 하는 날일까요? 아닙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도 되돌아보는 날입니다.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야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주님께서 주신 지금이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각종 핑계를
덧붙이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을 때,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분명 후회를 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후회할 것들을 줄여 나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가요?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내 자신이 더욱 더 지금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오늘 위령의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올바른 순간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삶의 모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찰리 채플린).
우리의 꿈을 향해 지금에 충실 합시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평균 수명은 44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임금이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제일 좋은 것만 먹었고, 위험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또한 주변 사람들의 철저한 보호를 받으며 살았을 텐데, 지금으로 치면 엄청나게 짧은 삶을 산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장수를 했던 왕이 있습니다. 74세를 살았던 조선을 건국한 태조, 또 83세를 살았던 영조입니다. 지금 시대에서는 이 나이로 장수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의료기술이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을 떠올렸을 때 74세, 84세면 지금으로 치면 100세 이상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두 왕을 보면 왕조를 세우거나 또 번창을 시켰던 왕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꿈을 펼친 사람인 것입니다. 편안하고
아무 일도 없는 태평성대를 누렸던 왕들은 모두 일찍 삶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꿈을 펼친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꿈 없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힘들다는 말만 하면서, 편안한 삶만을 지향하면서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주신 삶은 대충 살아도 되는 삶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 특히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분의 뜻에 맞게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메'에서 옮김 (1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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