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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1028(화)-주님의 부르심에...-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10. 28. 09:06
2014년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제1독서 에페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복음 루카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신부님 중에서 운전을 아주 잘 하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차를 타면 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또 도저히 주차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곳도 척척 주차를 하시는 등 아주 능수능란한 운전 실력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전을 잘 하기 때문에 이제까지 사고 한 번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크고 작은 사고를 참 많이 당하셨습니다. 즉, 자신의 잘못보다는 상대 운전수의 잘못으로 인해 사고를 겪게 된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운전을 잘 하기 때문에 사고를 피할 가능성은 많지만, 그래도 사고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하긴 운전을 잘 한다고 해서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서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앞에 사고가 나서 꼼짝달싹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을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즉, 자기만 잘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 세상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때,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만 잘 나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나’에게만 모든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언젠가 어떤 분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시더군요.

“‘나는 준다.’는 현재형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준다.’의 미래형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사람들은 “나는 줄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준다.’의 미래형은 ‘나는 받는다.’입니다.”

내가 미래에 무엇인가를 받기를 원한다면, 지금 이 현재에 무엇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웃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되네요.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을 맞아 오늘 복음에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능력 많고 재주 많은 사람들을 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팔아 넘겨 배신자의 소리까지 듣게 될 유다 이스카리옷까지 제자로 뽑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다 아시고서도 주시기 위해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이 여기에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라는 부르심, 하느님 나라 건설에 힘을 쏟으라는 부르심,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라는 부르심. 그리고 이 부르심에 철저히 응답했을 때, 구원이라는 큰 선물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욕심만을 내세우며 사는 우리들입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받은 나는 지금 현재 어떤 응답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많은 것들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더’ 달라는 요청만 하면서 배신에 배신을 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계단의 처음과 끝을 다 보려고 하지 마라. 그냥 발을 내딛어라(루터 킹).



하느님의 준비

어느 남자가 하느님께 기도했다.

“저 예쁜 여자와 결혼하게 해주시면 절대 바람피우지 않겠습니다. 만일 바람을 피운다면 저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바람을 피우게 되었다. 남자는 처음에 두려웠으나 죽지 않게 되자 몇 번 더 바람을 피웠다.

3년이 흐른 어느 날 배를 타게 되었는데, 큰 풍랑이 일어나자, 옛날에 하느님과 한 약속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무서웠지만 나 혼자도 아니고, 백 여 명이나 함께 배를 탔으니 설마 나 하나 죽이려고 배를 가라앉히진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 때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 같은 놈 백 명 모으느라 3년이 걸렸다.”

재미있는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이 안에서도 우리가 생각하고 반성할 것이 있네요.

죄 짓지 말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안 그러면 벌 받습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