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필리
1,1-10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바오로와 티모테오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필리피의 모든 성도에게, 그리고 감독들과 봉사자들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여러분을 기억할 때마다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7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로서는 당연합니다. 여러분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수호하고 확증할 때나 여러분은 모두 나와 함께 은총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8 사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9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10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 루카
14,1-6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2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4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6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마도 방송에서는 예년처럼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를 품고 있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이제 2014년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시간의 빠름을 여지없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얼마나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았는지, 혹시 후회할 날들을 만들기만 했었던 것은 아닌지…….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2014년을 더욱 더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10월의 마지막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요즘에 교육을 받으러 강남에
갑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강남역 지하철로 들어서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지하철 입구가 마치 엄청난 사람들을 토해내고 집어 먹는 거대한 입처럼 느껴지더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이 복잡한 곳이 뭐가
좋다고 사람들은 이 거리에 올까?’ 싶었습니다.
제가 사는 답동은 늘 한산한데, 왜 이곳 강남은 사람들이 많을까요? 어쩌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믿기 때문이지요. 물론 믿는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것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의 입소문들을 이렇게 굳게 믿어 주면서도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믿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믿지 못함이 주님을 향하면서 불평과 원망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믿음을 항상 강조하신 예수님의 말씀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믿는 사람들만이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판단만을 따를 것이 아니라, 늘 우리를 지켜주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그저 예로부터
내려온 관습과 자신들의 일반적인 생각만을 내세워서 안식일 법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영적 제물인 거룩하고 덕성스러운 삶으로 하느님께 자기를 바치는 것임을 모르기에 예수님과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라도 사랑의 실천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사실 안식일 법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사적인 일에 집중함으로 인해 하느님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관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사랑의 실천 역시 하나의 일로 취급합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이제 과감하게 거두어야 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판단하는 것,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적으로 간주해서 해를 가하려는 모습 등등 우리가 거두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요?
모두가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늙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벤자민 프랭클린).
우리 신앙인에게 굳은살은 어디에?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강의 시간을 이용해서 강의 내용에 적합한 노래를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타 실력이 형편없었거든요. 따라서 매일 한 시간 가까이 기타 치는 연습을 해야만 했습니다. 연습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오른 손가락 끝은 부드럽지만, 기타 코드를 잡는 왼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이게 되더군요.
사실 처음에 기타를 많이 치다보면 코드를 잡는 왼손 손가락 끝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그러나 연습의 반복으로 인해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상태가 옵니다. 바로 굳은살이 박이게 될 때입니다. 왼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이게 되었다고 해서 제가 부끄러워했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그래도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볼 수 있었기에 기뻐했습니다.
굳은살은 어쩌면 그 사람의 신분증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굳은살이 생겨야 그 부분의 아픔도 사라지게 됩니다. 언젠가 어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발이 인터넷 상에 공개된 적이
있는데, 발가락에 엄청난 굳은살이 박여서 너무나 못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따지고 보니 열심히 한 사람치고 굳은살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작가들도 굳은살이 있습니다. 연필을 잡는 손 가운뎃손가락
첫째 마디 옆면에 있지요.
우리 신앙인에게는 어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어야 할까요? 기도할 때 꿇는 무릎? 아니면 손을 합장하기에
손바닥? 솔직히 죄를 짓는 마음에 굳은살이 박였으면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가 쳐들어와도 거뜬히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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