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2티모 4,10-17ㄴ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루카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괜찮은 청년 하나를 만났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신학교에 들어가서 장차 사제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제가 혹시 라는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너 신학교 가라.”
이 말에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신부님, 저는 외로운 것은 못 참아요.”
이 말에 사제로 산다는 것이 ‘외로운 것’인가 싶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기 때문에 ‘외롭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연애를 하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애인을 바꾸는 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애인은 계속해서 생기는데, 사귀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물었지요.
“왜 너는 이렇게 애인을 자주 바꾸니?”
“누군가를 사귈 때 처음에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가 없는 거야. 나를 너무 구속하는 것 같고... 그래서 결국은 헤어지지. 그런데 혼자 지내다보면 너무 외로워서 금방 또 다른 누군가를 사귀게 되더라고.”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결혼은 판단력 부족, 이혼은 인내력 부족, 재혼은 기억력 부족이라고요……. 그런데 정말로 친구나 애인을 사귄다고 해서 외롭지 않을까요? 그 안에서 또 다른 외로움을 겪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외롭기 때문에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청년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어쩌면 사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나를 이해해주시고 나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더욱 더 느끼게 되고 그래서 외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전해줍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일꾼이 적다는 것이지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주님을 따른다는 것에 커다란 두려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한 외로울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으로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많이 간직합니다. 또한 돈과 명예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도 갖지요. 그러나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곳을 올라가도 외로움은 극복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욕심과 이기심이 더 큰 외로움을 내게 주기 때문이지요.
결국 주님만이 해답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외로움을 극복해주고 참 행복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자주 타인을 오해하는가를 자각하고 있다면 누구도 남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괴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실패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에게 “혹시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사업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뺨 맞을 것입니다. 성공을 위해 사업 하는 것이지, 실패를 꿈꾸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 심리 상담가인 에토 노부유키는 20년 이상을 기업의 현장에서 많은 상담을 하면서 뛰어난 인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공통점은 ‘엄청나게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실패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전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며, 또한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언제나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항상 힘을 내어 살아야 할 것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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