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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806(수)-독한 마음을 품고 세상의 유혹들을 이겨내야-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8. 6. 06:18
2014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제1독서 다니 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복음 마태 17,1-9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요즘처럼 덥고 습기가 많은 한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기는 음식을 뽑는다면 아마 소위 ‘치맥’이라고 불리는 맛있는 치킨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치맥’은 늦은 밤에 더욱 더 그 유혹이 커집니다. 해 떨어진 후에 먹는 음식, 특히 기름진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유혹을 이겨내기란 참 쉽지가 않지요. 정말로 독한 마음을 품지 않는 한 그 유혹의 손길에서 벗어나기가 참 힘듭니다.

이 세상은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에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유혹은 아주 대표적인 것들이지요. 그런데 이런 유혹들을 이겨낼 때 안일한 마음으로 가능할까요? 독하지 않고서는 이겨내기 쉽지 않습니다.

‘독하다’의 뜻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즉, 의지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의지를 가지고서는 세상의 유혹들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쉬운 것만을 선택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과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을까요?

‘편하게 살자. 대충 일하자. 좋은 것이 좋은 거야. 그냥 눈감아 주자. 오늘까지만 쉬자. 그냥 자자…….’

많은 분들이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면서 금주 금연을 다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금주 금연이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원히 독해지겠다는 말은 너무나 힘들며 또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 독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어떨까요?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바램들인 유혹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특별히 가깝고 사랑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신 뒤, 그곳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하고 가까웠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역시 유혹에 빠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미리 보여주신 하느님의 영광을 깨닫기 보다는 그곳에 그냥 눌러 살자는 인간적인 유혹에 넘어가고 말지요.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하긴 전교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서 이제는 어렵고 힘든 방랑의 생활보다는 이러한 영광의 자리에 눌러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겠지만, 이는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정말로 많은 유혹 속에 묻혀 살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이때 우리들이 들어야 할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구름 속에서 이러한 말이 제자들을 향해 나왔지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우리 역시 주님의 말을 들어야 유혹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철저히 주님 편에 서기 위해 독한 마음을 품고 세상의 유혹들을 하나씩 이겨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출 것을 염려하라(김난도).



친구.

어떤 분이 제게 보내주신 글입니다. 친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나는 나의 친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섰는지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친구에게 ‘저기....’ 라고 문자를 보내 보세요.

‘뭐?’ 라고 한 경우는 당신에게 별 볼일 없는 친구이고, ‘왜?’ 라고 한 경우는 당신에게 필요 있는 친구입니다.

‘응?’ 이라고 한 경우는 당신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이고, ‘무슨 일이야?’ 라고 한 친구는 정말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무슨 일 있어?’ 라고 한 친구는 정말 곁에 두어야 하는 친구입니다. ‘?’ 물음표만 찍은 사람은 친구도 아닙니다.

‘할 말 있어?’ 라고 한 친구는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말해봐.’ 라고 한 친구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진 않습니다.

‘뭐야’ 라고 한 친구는 당신을 매우 싫어하는 친구입니다.

‘응’ 이라고 한 친구는 신경 안 써도 되는 사람입니다.

‘왜 그래?’ 라고 한 친구는 꼭 곁에 두어야 하는 친구입니다.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는 진정한 친구. 말 한 마디에도 진정으로 위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그 모습으로 말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1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