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803(일)-작은 것을 통해서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8. 3. 07:22
2014년 8월 3일 연중 제18주일

제1독서 이사 55,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 2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니, 이는 다윗에게 베푼 나의 변치 않는 자애이다.”


제2독서 로마 8,35.37-39

형제 여러분,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7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 마태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며칠 전 새벽,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당황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한쪽 눈이 떠지질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지? 왜 눈이 안 떠지지?’하면서 욕실의 거울 앞에 섰습니다. 거울을 통해서 바라 본 저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더군요. 한쪽 눈이 거의 감길 정도 퉁퉁 부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부어 있는 부위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바로 눈 밑을 모기한테 물렸더군요.

모기한테 물리면 불편하기는 해도 사는데 있어서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눈 밑은 달랐습니다. 많이 부어 있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묻습니다.

“아니, 눈이 왜 그래요? 사고 났었어요?”

눈이 엄청나게 부어서 사물을 보는데 초점이 잘 맞지 않습니다. 또한 말 할 때에도 불편해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에 사람들의 시선도 잘 맞추지 못합니다.

겨우 모기한테 물렸을 따름인데, 제 삶에 큰 불편함을 가져다줍니다. 작은 벌레 하나일 뿐인데도 말이지요.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그 작은 것 하나가 내 삶 전체를 흔들어 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의 일은 큰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작은 것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행하셨고,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일상의 삶 안에서 주어지는 자그마한 사랑의 일에 있어서 소홀히 하지 않는 충실함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여 지는 기적도 그렇지요.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놀라운 기적, 즉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작은 봉헌물을 가지고 큰 기적을 만드신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이루신 것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외딴 곳이었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하느님의 큰 영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이 명령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었는데, 설마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을까요? 내어 놓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겠지요. 자기 것을 기꺼이 내어 놓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을 주님께서는 그다지 신경 쓰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작다’고 불평을 쏟지도 않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기쁘게 내어놓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시고 모두를 만족시킬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주님의 명령에 곧바로 응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적은 봉헌으로도 커다란 일을 행하십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라. 그들이 걸어온 길은 고난과 자기 희생의 길이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만이 위대해질 수 있는 법이다(G.E. 레싱).


나쁜 본보기도 필요하다.

우리 곁에는 참 좋은 본보기가 많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정말로 존경스럽고 사랑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본보기를 따르기란 참 쉽지 않더군요. 성인 성녀의 삶을 보면서 그들처럼 살아야 하는데 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나와는 딴 세상에 사시는 분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본보기를 제대로 따르지 못했습니다. 대신 좋은 본보기보다는 나쁜 본보기를 따라할 때가 많았지요. 나쁜 본보기는 세속적이며 물질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의 감각들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유혹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나쁜 본보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솔직히 저는 좋은 본보기보다 나쁜 본보기를 따라 하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좋은 본보기는 너무나 엄청나서 그냥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쁜 본보기는 저도 모르게 따르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절대로 안 돼.’라는 생각으로 올바른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지요.

삶 전체가 은총이며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매 순간이 주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삶이 의미 없을까요? 단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나의 속 좁은 마음은 아닐까요? 세상에 완전히 틀린 것은 없습니다. 고장 난 시계조차도 하루에 두 번은 제대로 된 시간을 가리키지 않습니까?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