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725(금)-모든 이를 위한 낮은 삶을 살아야-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7. 25. 07:33
2014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 2코린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을 같이 하자는 초대의 메시지를 너무나 많이 받기 때문이지요. 사실 한때 스마트폰을 가지고 게임을 해 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 주변에 이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오로지 저인 것만 같았거든요. 아무튼 게임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습니다. 누구는 점수가 백 만 점이라는데, 저는 몇 만 점을 넘기기도 힘들었거든요. 이것도 경쟁이라고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기를 쓰고 했습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게임을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유료 아이템을 구입해서 점수를 더 올리려고도 했습니다.

지금 현재 그 게임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게임이 제 삶에 있어서 본질적이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재미는 있습니다. 또한 무료한 시간을 게임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이 행동이 몇 년 후 나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아니오.’라는 답변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임만이 아니지요. 내 삶에 있어서 하고 있는 그 모든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이 행동과 생각이 몇 년 후 나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분명히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저절로 결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 순간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게 있어 가장 본질적인 것처럼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 나라에서의 영예를 청합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그러한 영예를 먼저 구한 야고보와 요한을 시기하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이 청이 본질적인 것이라고 다른 제자들 역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영예가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낮은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낮아져도, 주님께서 낮아지신 만큼 낮아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 분이 아주 많이 낮아짐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이라는 영광을 얻어 하늘 나라에 올라가게 되었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들 역시 이렇게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한 낮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이며, 이런 삶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 완전히 펼쳐지는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순간의 만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길. 바로 주님의 길을 쫓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불행한 사람의 특징은 그것이 불행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쪽으로 가는 점에 있다. 우리 앞에는 불행과 행복의 두 갈림길이 언제나 있다. 우리 자신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A.링컨).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하겠습니까?

일전에 명동에 갔다가 거리에서 선교하는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소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분이시지요. 그런데 이분들의 선교 방식도 업그레이드가 되었더군요. 글쎄 중국어로 선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명동 거리에 외국인들, 특히 중국인들이 많이 왕래하다보니 이들을 향해서 선교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자국말로 선교를 한다고 호의적으로 다가와서 대화를 나눌까요?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는데, 많은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연예인 한 명이 나왔습니다. 그는 남들 몰래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소문이 나서 이렇게 방송에까지 나와 그 사연들을 말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가치관을 들으면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방송에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한 개신교 신자이지만, 하느님, 교회, 신앙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방송 후에 신앙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언행이 훌륭한 전교가 된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전교, 가장 주님은 잘 증거하는 방법. 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