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미카 2,1-5
1 불행하여라,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 그들은 능력이 있어, 아침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긴다. 2 탐이 나면 밭도 빼앗고, 집도 차지해 버린다. 그들은 주인과 그 집안을, 임자와 그 재산을 유린한다. 3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이 족속을 거슬러 재앙을 내리려고 하니, 너희는 거기에서 목을 빼내지 못하고, 으스대며 걷지도 못하리라. 재앙의 때이기 때문이다. 4 그날에는 사람들이 너희를 두고서 조롱의 노래를 부르고, 너희는 서럽게 애가를 읊으리라. ‘우리는 완전히 망했네. 그분께서 내 백성의 몫을 바꾸어 버리셨네. 어떻게 우리 밭을 빼앗으시어 변절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5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고 줄을 드리워 줄 이가, 주님의 회중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복음 마태 12,14-21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행복해지고 나서야 감사할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감사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이유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삶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 안에 있는 감사함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감사함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기울이지 않느냐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삶의 심한 굴곡을 겪은 어떤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하는 일마다 잘 되지가 않았지요. 그러다보니 점점 우울해졌고, 여기에 뇌종양 판정까지 받은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순간,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검사 결과가 오진이라는 것이었지요. 병원에 올 때 오진이었음을 말해주려고 했으나,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서 이렇게 급하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절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병원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큰 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살을 선택할 뻔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새롭게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면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이 형제님은 또 한 번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평생 모은 거금이 사기 사건에 휘말려 잃어버린 것이었지요.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부터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님은 “까짓, 괜찮아.”라고 반응했습니다. 큰 시야에서 보니까, 이러한 물질적인 손해도 자신의 인생에서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함에 주의를 기울인 이 형제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특히 주님을 믿고 따르는 분들은 그 감사함에 더욱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없앨까 모의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오셨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목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들에게 그렇게 많은 놀라운 기적과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어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배척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합니다. 이 사실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물러가십니다. 무서워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를 범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당신께서 그들의 시선에서 사라지신 것이지요.
이토록 인간을 사랑하신 주님의 끝까지 배려하는 사랑이기에 우리들은 주님의 이름에 희망을 걸 수 있으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감사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평생 한 기도가 “감사합니다.” 뿐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물은 담지 못해도(‘좋은생각’ 중에서)
한 여인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 저는 지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어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늘 작심삼일입니다. 새해 계획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신부는 창고에서 뽀얗게 먼지 낀 소쿠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소쿠리를 여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여기에 물을 가득 담아 오세요.”
여인은 구멍 숭숭 난 소쿠리에 물을 담아 오라는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우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소쿠리에 물이 담길 리 없었다.
여인은 화난 얼굴로 돌아와 신부에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쿠리를 내밀었다. 그러자 신부가 말했다.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소쿠리의 먼지는 깨끗이 사라졌지요? 마음먹은 대로 안 돼도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자체가 의미 있다는 말에 커다란 힘을 얻게 됩니다. 설마 이 노력마저 하지 않겠다면서 주저앉는 것은 아니죠?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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