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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4(화)-가장 근본적인 것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6. 24. 07:29
2014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 이사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제2독서 사도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복음 루카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며칠 전에 강의를 위해 전철을 타고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하게 된 강의여서 그런지 꽤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저녁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다들 피곤한 모습을 취하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전철 안에 한 아이가 너무나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아이의 소리에 짜증을 냅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아이를 마주보았습니다. 그리고 약간 인상을 쓰면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쉿” 하고 말했지요. 그런데 이 아이의 엄마가 “봐, 아저씨가 조용히 하라고 하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공공장소에서는 당연히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지, 제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고 해서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누구 때문에’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긴 저 역시 제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고 원망을 했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모습보다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위의 아이의 경우, 왜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것이 근본적인 것이지, 결코 제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는 그 말이 근본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나설 때, 우리는 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도 줄여 나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할례식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때 사람들이 당시 관습에 따라 아기 이름을 아버지 이름인 ‘즈카르야’라고 하려 했을 때, 어머니 엘리사벳은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다면서 반대하지요. 그리고 그 아버지 즈카르야 역시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요한의 잉태 소식을 믿지 않아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의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됩니다.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나섰고 이로 인해 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모를 따라 세례자 요한 역시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나서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에 충실하였고, 또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평생 살다가 순교의 영광까지 얻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돈? 명예?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삶? 그 모든 것보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주님을 따르는 삶이며,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근본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 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트레이 파커).


어떤 감사를? (김영학, '감사는 고마움에 대한 믿음과 지혜의 행동이다.' 중에서)

감사의 종류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조건(If)의 감사라고 하지요. ‘만약 내게 무엇을 해준다면’, 또는 ‘만약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감사하겠다는 식의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어쩌면 이기적인 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유(Because)의 감사입니다. ‘무엇을 해주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감사하겠다는 감사지요. 따라서 어떤 성과의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자칫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 자신보다 남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마지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의 감사입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것 자체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언젠가 축복과 은혜와 사랑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또 그렇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첫째와 둘째 감사, 즉 조건과 이유의 감사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축복과 은혜를 느끼지 못하며 그로인해 행복한 삶을 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 주님의 사랑 안에 사는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에 모실 수 있는 오늘이 되십시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