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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628(토)-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6. 28. 11:41

2014년 6월 28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제1독서 이사 61,9-11

내 백성의 9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그들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복음 루카 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언젠가 어느 성당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잠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당 주임 신부가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왔지요. 하지만 그 많은 열쇠 중에서 사무실 문에 맞는 열쇠를 찾기란 쉽지가 않더군요. 열쇠에 어디 열쇠인지 전혀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맞는 열쇠를 찾기 위해서 약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부가 “내가 한 번 해 볼게.”하면서 열쇠꾸러미를 받아서 다시 밀어 넣어 봅니다. 또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신부가 “내가 할게.”하면서 열쇠꾸러미를 받아서 맞춰보네요. 결국 아무도 사무실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열쇠꾸러미에 사무실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달려 있더군요.

맞는 열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신부들이 “내가 해볼게.”를 외치면서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내가 하면 될 것 같다.’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긴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고 합니다. 위의 열쇠꾸러미에 대한 예도 있지만, 단체사진을 찍고 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 단체사진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존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찾는 얼굴은 누구일까요? 바로 ‘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모습들이 자기 편한 대로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습성이라면서, 자기중심적인 모습들을 고쳐나갈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모습만을 주장하며 살면 안 됩니다.

사실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시면서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맞이하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성전에서 찾으셨을 때,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원망의 목소리를 내시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도리어 떳떳하다는 듯,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따끔하게 혼을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단지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라고 전해 줄 뿐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생각만을 내세우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그저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주님의 입장에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셨던 성모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닌, 주님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칼리 피오리나).



용기를 내십시오.

인간에게는 참으로 많은 덕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쓸모 있는 덕목이 어쩌면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용기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맞대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순간 ‘용기’를 냅니다.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해 보지도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 순간에 냈던 ‘용기’라는 덕목은 아주 짧은 기간만 필요합니다. 그 일을 마칠 때까지 용기를 간직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 과정 안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 순간적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용기는 아주 짧은 기간, 그리고 순간적인 힘을 내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덕목, 즉 작은 힘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쓸모 있는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순간에만 필요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그 용기를 잃어서 일생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작은 힘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어떠한 경우에도 버리지 마십시오. 이것만 간직할 수 있다면, 부족하고 나약한 내 자신을 통해서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