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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610(화)-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살아갈 때-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6. 10. 08:24
2014년 6월 10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열왕 17,7-16

그 무렵 엘리야가 숨어 지내던 7 시내의 물이 말라 버렸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9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그곳에 머물러라.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해 놓았다.” 10 그래서 엘리야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11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12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13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16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복음 마태 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어떤 책에서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세 가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교육, 예술,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는 과연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까요?

교육은 각종 사교육이 난립하면서 진정한 교육이 사라진지 오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예술 역시도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것이 판을 치면서 세상을 더욱 더 혼란하게 만들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떨까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보다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더 여념이 없어서 방부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소금이 고기를 썩지 않게 하듯이, 주님의 제자들 역시 이 세상 안에서 소금과 같은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소금이 제 맛을 잃어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듯이, 제자들 역시 주님께서 주신 참맛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방부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참맛도 잃어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의 것을 더 염두에 두고 살고 있는 우리들.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계속해서 초대하고 계십니다. 킴 윅스라는 시각장애인 성악가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합니다. 절대자가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또 우리는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그 절대자에게 믿음으로 순명하면서 오늘을 살면, 절대자는 내일로 인도하셔서 마침내 내 생애를 그 분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 곳에 도달하게 하실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 분명히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살아갈 때, 분명히 가장 좋은 길, 가장 큰 행복의 길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오늘 복음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에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처음부터 겁먹지 말자.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세상엔 참으로 많다. 첫걸음을 떼기 전에 앞으로 나갈 수 없고 뛰기 전엔 이길 수 없다. 너무 많이 뒤돌아보는 자는 크게 이루지 못한다(요한 폰 쉴러).



하느님을 알아가기

어떤 신학생이 하느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일어 영성지도신부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신학생은 신부님께서 자신을 혼낼 줄로만 알았지요. 왜냐하면 장차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아직도 신관을 정립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겠느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그러한 고민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 고민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도 없으며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도 없다는 말씀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하느님 존재에 대한 고민은 평생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단지 조금씩 알아가면서 하느님 앞에 다가가는 것이며, 그때 하느님 존재가 점점 분명해질 것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1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