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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517(토)-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주님의 사랑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5. 17. 06:10

2014년 5월 17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13,44-52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복음 요한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958년, 로버트 레인이라는 뉴욕 사람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로버트에게는 이미 아이들이 많아서 붙일 만한 이름은 다 붙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너’(승자)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로버트는 아들 하나를 더 얻었고, 이 아이의 이름을 ‘루저’(패자)라고 지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대조적인 이름을 갖게 된 두 형제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들은 성장해서 한 명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간 후 졸업해서 뉴욕시 경찰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은 범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둘 중 누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경찰이 되었고, 누가 범죄자가 되었을까요?

이 질문을 받은 뒤, 저는 ‘루저’라는 이름을 받은 아이가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루저’라는 놀림을 계속해서 받았을 테고, 그 영향을 받아서 실제로 ‘루저’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저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즉, ‘위너’는 절도와 주거침입, 가정폭력 등으로 서른 번도 넘게 체포되었고, ‘루저’는 경찰이 되어 ‘위너’와 같은 사람을 잡아들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자’라고 자기를 부른다면 불행이 찾아올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부르냐가 아닙니다. 그보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부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특별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바로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가 역사를 특별하게 바꾼 것은 없지요. 하지만 그는 늘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난 특별해.”

오프라 윈프리가 미디어 왕국을 직접 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늘 이렇게 스스로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난 특별해.”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우리를 특별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부족한 나 같은 이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스스로를 특별하지 않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주님을 굳게 믿는 사람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특별한 자아상을 가지고, 이 세상 안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또한 주님의 일을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습니까?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만드시는 주님을 굳게 믿으세요.

아들은 아버지의 초상화와 같다(성 암브로시오).



용기란?

다음은 어떤 드라마의 대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용기라고.”

“용기... 그거 아닙니까?”

“아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계속하는 게 용기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용기가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감정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야 맞겠지요. 용기는 감정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인 것이지요.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죄로 인한 두려움으로 주저앉을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때 주님께 청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나의 부족한 믿음을 채워달라고...

우리의 특별함을 잘 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이 모든 바램들을 분명히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