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믿음으로 헤쳐나가길 빌며...

행복한 쉼터, 두레골...

◐ † 사랑과 믿음 ◑/강론과 신앙 이야기

140515(목)-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빠다킹(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레골 2014. 5. 15. 06:36

2014년 5월 15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복음 요한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제가 아는 형제님 중에서 운동 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는 분이 계십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땀 흘려 운동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싫어하시지요. 제가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저도 운동해요. 숨쉬기 운동.”이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형제님께서 요즘 아주 열심히 운동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것도 가끔 하는 운동이 아니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신답니다. 왜 그럴까요?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거든요.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특히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오래 사실 수가 없어요. 여기서 더 나빠지면 의사인 저도 어떻게 하지 못해요.”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운동을 열심히 하고, 또 생활습관도 많이 바꾼 것입니다.

미리 생활습관을 바꾸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삶 안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갖기가 쉽지 않지요. 즉, 어려운 상황에 처해야만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교훈은 성공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실패를 통해 큰 상처를 얻기도 하지만, 이 실패 안에서 커다란 교훈,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겪는 ‘엄청난 고통과 시련’들이 오히려 축복이며 은총도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인생이 공평한지 아닌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요. 그저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불행한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피하지 않으시지요. 하느님의 아드님이면서도 겪어야 할 그 치욕을 당신의 몸으로 모두 다 받아들이십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당신의 몸을 통해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역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에 하신 말씀이지요. 직접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신 뒤에, 과연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를, 또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할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음도 이야기하십니다.

문제는 그러한 포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을 선택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주어지는 주님의 축복과 사랑은 보지 못한 채 불평불만으로 일관된 모습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점을 잊지 않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오늘을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정말로 행복한지 그 답을 스스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슬퍼하는 것만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슬퍼하면 된다. 하지만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새로 시작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답답해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한적한 시골길을 마냥 걸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걷던 중에 비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일기예보에는 흐리기는 하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이날은 안타깝게도 일기예보가 틀렸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우산도 없고 비 피할 곳도 없는 상태에서 저는 비를 쫄딱 맞으면서 걸을 수밖에 없었지요. 점점 몸이 추워지고 걷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힘든 고행임을 깨닫습니다. 그때 제일 생각났던 것이 어딜까요?

바로 제 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나더군요.

‘왜 내 방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환경이 바뀌면 마음이 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이 바뀌어야 모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특별한 장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또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자리가 새로운 일을 하는데 가장 쉬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리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자리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새로 시작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는 바로 지금 내가 있는 자리입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복잡한 문제를 풀겠다고 굳이 밖으로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옮김 (14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