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잔꽃송이' 라는 책에 나오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는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상대를 존중하며 거룩하게만 산 줄 알았는데 이 책에서 본 성인은 인격을 모독해도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있다. 성인이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사부님, 어느 길로 갈까요?" 하고 물었다. 성인은 '이쪽이다' '저쪽이다' 말하는 대신 하느님께서 가리키는 길로 가면 된다고 대응하였고, 제자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성인은 한 제자를 갈림길에 세우고는 팽이 돌리듯이 머리를 잡고 뺑뺑이를 돌리다가 정지시켰다. 제자가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다가 어느 한쪽 방향으로 멈추어 서자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리키신 길이다." 하고 그 길을 가리켰다. 그 길이 주님이 선택해 주신 길이라는 말에 제자들은 군소리 없이 사부님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이 순명을 이해할 수 있는가? 요즘 수도원이나 교구에서 이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려 각자의 임지를 정해 준다면 그 장난(?)에 따를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는 순명해야 하지만 인간에게는 순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은 편협하고 완벽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순명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내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직접 지시해 주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느님의 명령을 알아듣고 그에 대한 순명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로서는 파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하느님에 대한 순명은 인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순명할 상대보다 순명 자체에 의미가 있다.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가 있듯이...... 그 예를 우리는 대자연의 이치에서 보게 된다. 우리는 자연이 인간보다 위대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사실이고 맞는 말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구는 행태를 보면 자연은 그야말로 인간이 마음대로 해도 좋을 만큼 나약하고 무력하게 보인다. 풀은 뽑으면 뽑히고, 나무는 꺾으면 꺾이고, 산은 깎으면 깎인다. 자연은 인간에게 순명한다. 나무는 인간이 꺾어도 '왜 꺾느냐?' 라고 반항 한 번 않고 꺾이고, 어디에다 옮겨 심든 상관 않고 옮겨 심은 곳에 뿌리를 내린다. 잘못 심어 말라 죽어도 반항하지 않으며, 잘 자라서 인간의 먹이가 된다해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폭군으로 다가오는 인간에게도 고분고분 순명할 뿐이다. 그런데 궁극에 가서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만다. 자연의 순명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자연의 순명 앞에 인간은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의 순명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신비, 하느님의 신비를 대하게 된다. 집회서는 이렇게 말한다(집회 43, 13-14). 그분의 명령으로 눈이 내리고 심판의 번갯불이 떨어진다. 그분의 명령으로 하늘 곳간이 열리고 구름이 새처럼 날아간다. 온 대자연이 그분의 분부로 움직인다. 눈이 내리는 것도 그렇고, 꽃이 피는 것도 그렇다. 흰눈이 춘삼월에 내리면서도 지금은 봄인데 왜 지금 내리라 하느냐고 하느님 명령의 부당성을 따지지 않는다. 춘삼월에 내리는 눈은 한겨울의 눈보다 더 신비롭다. 만일 눈이 3월에 내리기를 거부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신비로운 춘설을 구경할 수 없으리라. 순명이 없는 곳에서는 생명에 대한 신비도 사라지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대자연처럼 순명의 삶을 사셨다. 하느님에게 순명하여 인간이 되셨고, 요한에게 순명하여 물속에 잠기는 세례를 받으셨고, 때리면 맞으셨고, 수염을 뽑으면 뽑히셨으며, 못 박으면 못 박히셨고, 죽이는 인간에게 순명하여 죽으셨다. 죽으시는 순간까지 순명하신 것이다. 예수님께 하느님께만 순명하지 왜 불의한 인간에게까지 순명하셨는가 따질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그분의 순명은 하느님에 대한 순명에서 나온 것이다. (계속) - 인생피정/이제민/생활성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130519) |
'◐ † 사랑과 믿음 ◑ > 오늘의 기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30525(토)-어린이가 되는 훈련 (0) | 2013.05.25 |
|---|---|
| 130519(일)-오늘의 묵상(성령) (0) | 2013.05.19 |
| 130517(금)- 어머니의 눈 (0) | 2013.05.17 |
| 130512(일)-오늘의 묵상(승천) (0) | 2013.05.12 |
| 130512(일)-평화의 시 (마더 데레사) (0) | 2013.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