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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현대인은 광야에서의 첫사랑을 너무 빨리 잊고 산다. 도시의 안락한 삶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 망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도시 한복판에서 더욱 방황하는 삶을 살게 한다. 피정은 망각과 방황 속에서 이 삶으로 불러 주신 첫사랑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내가 처음 만난 그 순간으로 나를 끌어올려 그 순간과 하나 되게 하며, 이 원초적 상태에서 나를 만나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피정은 다시 어린이가 되게 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어린이는 아직 자신의 일을 자신의 주관이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는 하나 그만큼 자기 생명의 원천에 가깝게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 3) 라고 하신 말씀이나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한 3, 3) 라고 하신 말씀은 출생의 순간, 아니 그 이전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그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너무 어른이 되어 버려 어린이의 순수성을 잃은 현대인에게 하시는 경고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른이 되면서 출생의 순간을 잊고 거기서 자꾸 멀어진다. 출생의 순간으로 돌아 간다는 것,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완성을 향한 엄청난 수련이 아닐 수 없다. 출생 이전 죽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인생에 허무를 알리는 끝 장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완성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루카 복음서(18, 15-17)에 이어 요한 복음서 (3, 3-8)의 예수님 말씀을 차례로 들어 보자. (중략) 어린이가 된다는 것은 원초적 자기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지 어린이 수준의 상태에 머물거나 어린이 흉내나 내며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은 자라면서 어른이 되기 마련이다. 다 큰 어른이, 유아 상태에 머물러 어린이 흉내를 내고 아이처럼 철없이 하는 행동은 천진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 이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어린이상은 이런 덜 성숙한 모습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 어린이상은 지극한 어른의 나이에도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잃지 않는 순수한 얼굴이다. 순수한 할아버지는 어린이가 아니면서도 어린이이다. 말하자면 두 번째 단계의 어른을 뛰어넘은 어린이이다. 어른 중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과 어린이의 순수함을 간직한 어른이 있다. 후자의 어른은 '어린이 - 어른- 어린이' 라는 세 단계 과정을 거쳐 어른에 이른 사람, 즉 어린이가 된 어른이다. 이 어린이 같은 어른은 어른이면서 두 번째 단계의 그 어린이 아니며 어린이이면서 첫 번째 단계의 어린이와는 다르다. 세 번째 단계에 도달한 어른에게는 어린이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 온몸에 그대로 드러나 생동한다. 그는 아직 세계나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이 형성되어 있지 못한 어린이와는 다르면서 그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린이가 되라고 하신다면, 이는 분명히 미숙한 어린이로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을 잃지 말라는 정도의 경고도 아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에서 멀어진 이기주의, 온갖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차 어린이의 순진무구를 무자비하게 짓뭉개는 어른들의 단계를 극복하고, 그 후 세 번째 단계의 '어린이'에 도달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인간의 어린이다운 실존이 강조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도 이런 차원에서 알아들어야 한다. 니코데모는 처음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오해했다. 그래서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영으로부터' 즉 물과 성령으로 세 번째 단계의 인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인간은 영의 인간이다. 영의 인간은 어린이와 어른의 단계를 거쳐 어린이에 이른 인간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이는 다시 어린이가 된 어른 속의 어린이, 영의 인간이다. 자기 일생의 삶을 통해 자신의 원천을 찾은 사람, 자기를 찾은 사람은 영의 인간인 것이다. 인간은 어린이 이전의 어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시 원천을 찾아야 한다. (뒷부분 길게 있지만 여기까지 줄입니다. ^^) - 인생피정/ 이제민/ 생활성서/'어린이가 되는 훈련 ' 중에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13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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