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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내가 먼저 영세를 받고 남편은 나보다 일 년 늦게 받았다. 남편이 영세 받은 후 손잡고 성당에 가서였다. 영성체 전에 다같이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였다. 그때 옆의 사람이 남편이란 걸 깜박 잊고 무심히 평화의 인사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이사람이 누구지? 나는 그 낯익은 얼굴이 처음 보는 이웃보다 더 낯선 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통 때 나란히 앉은 교우끼리 또는 앞뒤로 앉은 교우끼리 그때만은 서로 친애감을 확인하고 축복을 교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나처럼 주일미사 나가는 것 말고는 봉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은 교우들 얼굴을 익힐 새도 없기 때문에 그때만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고 또 좋은 표정과 만나고 싶어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짓다 보면 상대방도 조금도 낯설지 않고 어디서 본 듯한 착한 이웃으로 다가온다. 비록 잠깐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도 서로 낯설지 않게 맺어주는 귀한 친교의 시간에 평생을 같이 산 사람에게 느닷없이 낯가림을 한 것은 무슨 조화일까. 아니, 저 사람이 누구지? 저 초라한 중늙은이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내 남편의 낯섦에 놀라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난 줄 알고 살아왔다. 그는 뭐든지 나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위해 고달프게 돈을 벌고, 아이들에게는 믿음직스럽게 굴어야 하는 가장이었다. 그가 번 돈은 내 돈이었고 내 생각은 그의 생각도 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순간적인 돌연한 낯섦이 이런 나의 관습적인 생각에 충격이 되었다. 내 몸과 동일시하는데 익숙해져 있던 남편을 독립된 타자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톨릭을 믿고 나서 유일하게 체험한 신비체험이다. - 박완서/ 열림원/ 호미/ 소금항아리 - 에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10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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