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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마르코 2,18-22 단식은 절제의 수단입니다. 단식한다고 사람을 괴롭히고 이웃을 성가시게 한다면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사람을 위한 단식입니다. 사랑을 나누려는 '절제의 훈련'입니다. 백 번을 단식해도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없다면 그냥 '굶는 행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단식으로는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질고 독한 마음으로 단식한다면 '안 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렇게 단식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무감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단식이라면 어떻게 은총이 함께할는지요? 주님께서도 그런 단식은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인데, 그때 단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예수님과 연관된 단식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단식은 목적이 아닙니다. 은총을 얻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바리사이들도 축복을 원했기에 단식에 매달렸습니다. 완벽한 단식은 부정을 씻고 죄를 없앤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단식을 통한 절제는 율법준수를 도와줍니다. 그러기에 단식에 대한 규정이 많아졌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해 갔던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선입관 없이'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본질인 '주님과 맺는 괸계'를 언제나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단식은 '그다음'의 일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땅콩님 올리신 글 옮김 (10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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