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믿음으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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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믿음 ◑/오늘의 기도·묵상

091117(화)-친구의 마음에 보내는 편지 (안셀름 그륀)

두레골 2009. 11. 17. 11:0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우정에 속한다.
우정 덕분에 세계문학사에 아름다운 편지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우정에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친구에게 전할 수 있는 편지가 필요하다.
콘스탄틴 라우디베는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 사람들은
서로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하고 했다. 철학자 에른스트 호르네퍼는
친구에게 편지 쓰는 일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축제처럼 여겼다.
"편지는 그대에게 축제가 된다! 그대도 이 축제를 즐겨라!
그리스의 현자도 '축제 없는 삶은 쉴 곳 없는 방랑과 같다.'고 했다.
힘들고 쉴 곳 없는 방랑 중에 영혼의 쉼터를 찾아라. 바로 편지에서."

내면의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편지는 우정의 지속적인 표현이다.
편지는 언제나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을 찾아간 최초의 예수회 선교사 가운데 한 명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52년 선종)는
친구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가 쓴 편지들을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두 친구가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편지들은 그들의 우정을 생생하게 유지시켜 주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머나먼 중국에 있으면서도 친구 이그나티우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힘겹고 대담한 그의 여행과 선교 과업을 그 우정이 가능하게 해 주었다.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는 낯선 사람에게 쓸 때와는 다른 의미의 단어가 떠오른다.
친구는 내 내면의 예감과 만나게 해 준다. 친구는 내 마음속의 작은 감동을 표현하게 해 준다.
그래서 친구에게 쓰는 편지는 때로 아주 값진 것이 된다.
그 편지 속에서 스스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표현들이 발견된다.
우정은 우리 마음 속에서 한 친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삶과 사랑의 신비를 표현하는 말들을 이끌어 낸다.
친구끼리 교환하는 편지들, 예컨대 디트리히 본회퍼와 약혼녀 사이에, 보니파티우스와 리오바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들은 그들이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우정의 산 증거로 남아 있다.
우정의 신비를 느껴보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이러한 편지들을 즐겨 읽는 사람이 많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09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