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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루카 11,1-4 주님의 기도’만큼 위대한 기도는 없습니다. 서슬 시퍼런 율법의 시대에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로 부른다는 것은 목숨을 내건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했고 제거하려 했습니다. 율법을 훼손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과 대화함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요? 아이들은 그냥 ‘엄마, 아빠’를 부릅니다. 그러면 부모들은 왜 부르는지 압니다. 어린이의 대화는 이렇듯 부모님을 부르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몇 마디 하지 않아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애정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 앞의 어린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기도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부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말만 되풀이해도 훌륭한 기도가 됩니다. 다만 미운 감정을 ‘없앤 뒤’에 기도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이 말씀이 암시하는 가르침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미움을 체험합니다. 심한 경우 ‘이를 갈고’ 보복을 맹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감정을 딛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무슨 유혹이겠습니까? 미움을 합리화하고 용서에 ‘핑계’를 대는 유혹입니다.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소리님 올리신 글 옮김 (09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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