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날 현대신학자들은 심판을 하느님과의 만남의 한 측면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만남에서 인간은 재판처럼 심판관에 의해 삶을 판단받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선하심과 순수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어떻게 해서 심판이 되는지를 파악하려면 이러한 방식의
체험이 필수적일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죽음을 통하여 만날 때,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심판대에
앉으실 필요가 전혀 없고, 마치 재판관이 피고에게 권고하듯 권고할 필요가 없으며,
다음과 같이 말할 필요도 없다. '너는 이러이러한 점에서 무자비하게 거절하였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네게 주지시켜야겠다. 이러이러한 점에 너의 잘못이 있다.
나는 너를 심판해야 한다.' 하느님에게는 결코 이런 의미의 심판은 없을 것이다."
(G. 로핑크)
"여기서 '심판'은 단지 외부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재판행위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심판관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외부에서 가해지는
재판행위가 아닌 것이다.
'심판' 은 오히려 나의 인격적인 결정들을 '빛 아래 드러내는 것' 을 뜻한다.
주님과의 만남으로 내 삶의 무수한 결정 중에서 무엇이 은총이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때로는 사랑의 길을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도 했을 것이다.
누구의 삶이나 사랑과 거부, 진실과 거짓, 두 가지 측면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사람은 그러한 결정들로부터 그 절반만 취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보는 앞에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진실의 시간, 이것이 바로 심판이다."
(프란츠 요셉 녹케)
그렇다고 심판의 마지막 기준이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때 우리의 판단은 우리 내부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빛이 우리 자신에게 비쳐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스도 앞에서 나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 시원종말론/ 조규만/가톨릭교리신학원 - 에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천진암 기도항아리에서 온유님 올리신 글 옮김 (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