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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들어 가는 농부의 마음

두레골 2007. 12. 23. 23:01
 

 

타들어 가는 농부의 마음

 

출근길, 버스 안에서 한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욕을 심하게 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병원에 들렀다가 딸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는 길이라고 옆에 계신 친구 분께 말씀하셨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와 싸우게 된 내용은 이랬다.

 

가뭄 탓에 밭이 쩍쩍 메말라 가자, 할아버지께서 고추 밭에 물을 주자고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싫다고 하신 모양이다. 그랬더니 화가 난 할아버지가 그럼 고추 다 뽑아 버린다!라고 말씀하셨단다. 설마 했는데 다음 날 밭에 가 보니 정말 고추가 다 뽑혀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고추 꽃도 예쁘게 피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면서 할아버지 흉을 보셨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할머니께서도 몸이 아파 선뜻 밭에 물 주자는 할아버지 말씀에 응하지 못하셨던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약 값에 비료 값 들어간 걸 따지면 농사지어도 남는 것 없고, 손발 안 맞는 영감탱이와 농사짓느니 차라리 모두 사다 먹는 것이 낫다면서 울화를 달래셨다. 할머니 친구 분은 이번엔 고추 못 얻어먹겠네. 그래 이젠 농사 그만 지어. 하며 할머니를 위로하셨다.

 

가뭄 탓에 쩍쩍 갈라지는 밭을 보며 타들어 가는 농부의 마음을 본 듯 내 마음이 씁쓸해졌다. 해마다 농촌 빚이 늘어가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오늘 아침 시작된 장맛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텅 빈 고추밭에서 서성이고 계실 할아버지를 뵌 듯 마음이 아려 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농촌을 지키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명숙 님 / 인천시 서구 마전동 (071210)

 

- 좋은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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